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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레나 Nov 02. 2023

강사 수난기

강사는 차도 마음대로 못 끄나요

“자기 차 좋더라~? 그런 차 끌고 다니면서 강사는 왜 해?”  뭥미? 이건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10년 만에 내 꿈 찾아 복귀한 학교 동료 교사에게 들은 소리이다. 친정에서 가져온, 에어백도 없고, 음악은 카세트 테이프, CD, 라디오로만 들을 수 있는 골동품 같은 15년 된 차를 끌고 다녔었다. 그러다 둘째까지 낳고 이제는 좀 안전한 차 타야 하지 않냐며 남편이 3년 전에 마련해 준 차이다. 아니, 뭐 시간강사는 뚜벅이 거나, 소형차만 끌고 다녀야 하는 건가?


학교 보안관님도 이방인을 홀대하긴 마찬가지. 빈자리 찾아서 주차하려고 하면 꼭 다가와 한 마디 하신다. “여기는 행정실 직원 자리니까 다른 데 세워요.” 세 시간만 수업하고 나가니 끝 쪽에 차 쉽게 뺄 수 있는 자리에 세울라고 하면 또 쫓아와 "옆에 안 쪽으로 세워요." 하신다. “저 점심 전에 나가서요. 지난번에도 제 차 막아놔서 한 시간 기다려서 겨우 뺐어요. 저기 세우면 다른 분께 제 차 막지 않게 안내해 주실 수 있으세요?” 그러니 “아니, 주차장에 어떻게 다른 차를 못 세우게 하나? 그럼 차를 갖고 다니지 말던지!”하며 되려 목소리를 높이신다. 정직원 자리는 맡아주지만, 일개 강사 자리는 확보해 줄 수 없다는 건가. 세 시간 후 나와보니 내 차는 또 다른 차에 막혀 있어 뺄 수 없다.


집에 와서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대다가 딸에게 하소연했다. “연아야, 엄마 오늘 너무 기분이 안 좋았어. 이러쿵저러쿵... 일을 다시 시작한 건 엄마도 이제 좀 자아실현을 해보고 싶었거든. 엄마가 아이들 정말 좋아하는 거 알지? 주말 내내 위염으로 속이 쓰려 힘들었는데 오늘 교실에 들어가니까 막 힘이 나는 거야. (울컥) 엄마는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전율이 쫙 흐르더라. 엄마의 따뜻한 관심을 느끼고 엄마로 인해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혹시 나쁜 길로 가려던 마음 고쳐먹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니. 그게 바로 엄마가 학교에 나가는 이유야.” 가만히 듣고 있던 딸이 말한다. “엄마, 어른 같은 소리 하네?” 남편도 한 마디 거든다. “당신이 담임을 안 해서 그래.”



그렇다. 담임도 안 하고, 하루 세 시간 수업만 딱 하고 오면 되니 꿀맛 같은 일이다. 아침에 아이들 챙겨서 보내놓고, 오전 시간에 잠시 다녀와 먼저 집에 와 있으니 아이들도 엄마의 부재를 크게 못 느낀다. 한 때 정교사를 꿈꾸던 시기도 있었지만, 내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중요했고, 소중한 시기를 아이들과 함께했기에 후회는 없다. 아직도 내 손길이 많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기에 지금은 정직원으로 일 할 자신도 없다. 강사라고 무시하는 눈빛을 견뎌내야 하지만, 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음에 감사하다.


물론 책상 자리도 없어 교사 휴게실 의자 한 칸에 기대어 쉬는 시간을 보내야 함이 서글플 때도 있다. 쉬는 시간에 더 초라해진다. 쓸쓸한 내 뒷모습을 눈치 챈 것인지 마음 따뜻한 한 선생님이 말을 건네신다. “선생님, 여기 냉장고에 이 차 제 거예요. 꺼내서 편히 드세요. 그리고 제 자리 아시죠? 뭐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마음껏 가져다 쓰세요.” 꽁했던 마음이 스르르 녹으며 눈가가 촉촉해진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고 싶다. 10년 만에 찾은 학교의 아이들은 참 예뻤다. 수업준비에 쏟은 시간만큼 더 초롱초롱해지는 눈망울들. 사춘기 아이들도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있구나. 누가 뭐라해도 당당히 교실문을 연다. 학생들이 나의 버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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