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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주 Sep 19. 2022

늙는다

생각하는 우체통

  나는 늙었다. 거울을 보면 주름이 많아졌다. 날렵했던 턱의 선도 흐물어져서 이젠 얼굴형마저 사각형이 되더니 오각형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눈두덩이는 쌍거풀을 덮기 시작한다. 아직은 쌍거풀이 있어서 눈동자가 선명하지만 언젠가는 그렇지 않은 날이 오리라. 주변에서는 덮인 눈두덩살이 짓무르기 시작해 쌍거풀 수술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니 성형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젊었을 때는 전혀 생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중력의 법칙이라고, 피부를 끌어당기는 지구의 힘이라고 우리는 대화한다.


  오늘 거리의 은행나무들은 바람에 춤을 춘다. 막춤이다. 신명이 나는 것이 아닐 텐데도 몸 가눌데 없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러다 연두색으로 바랜 잎들을 본다. 곧 그 색은 더 밝게 바랠 것이고 결국은 노란색 단풍이 들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렇게 쇠하고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늙음을 거부하는 마음을 읽는다. 여전히 예뻐 보이고 싶은 나의 속물적 근성에 당황한다. 그나마 코로나로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입술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했을지도 모르고 파운데이션을 더 두껍게 발랐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렇게 한다해도 늙음을 숨길 수 없다고 한다. 우리들끼리 나누는 대화에서 우린 잠시 젊었졌을 뿐이다. 젊은 사람들 눈에 나이 든 사람은 한 덩어리로 나이 먹은 어른들일 뿐이다.


  인스타그램을 하다보니까 추천 릴스가 자주 뜬다. 몇 번 클릭을 했더니 아름다운 노년의 여성들의 짧은 영상들이 반복돼서 올라온다. 아름답게 나이 먹은 여성들의 세련되고 멋진 옷과 몸매의 프로포션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더불어 내 또래의 실버 모델을 하는 여성들의 릴스도 같이 뜬다. 하나같이 짙은 화장에 굽실굽실하게 길게 기른 머리다. 은발의 여성도 가끔 있다. 쎈 언니 인상이다. 머리가 검고 긴 머리의 여성들은 옷이나 포즈가 야하다. 언제부터인지 아름다움에 섹시함이 덧붙여졌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젊고 예쁜 여성들이 성형으로 비슷해 보이는 것처럼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았을 터인데 그 삶의 다채로운 무늬와 상징  가득한 그림이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예쁜 젊은이들을 따라한 듯한 사람도 꽤 많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젊어보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어보이는 것은 숨길 수 없다고 한다. 너무나도 정확하게, 똑똑하게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말을 분명히 한다.


  소비의 측면에서 보면 아름답게 늙은 여인, 멋지게 늙은 남성의 프로필은 그 나이 또래의 소비를 자극한다. 어쩌면 마케팅 측면에서 실버세대를 위한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한 모델이나 사업의 확장은 당연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런데 심술스럽게 나는 그냥 멋지게 늙은 사람들이 시장의 논리로 소비되기 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늙어갈지의 모델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망만큼 젊음이 소중하고 부럽기는 하지만 그 모든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내온 지금의 평화가 젊음에게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 아름다움은 젊음을 이기지 못한다. 젊음은 그 무엇보다 많은 혜택이 있다. 가능성의 혜택보다 더 큰 건 없다. 반면 늙음은 젊음이 지어야 할 많은 짐을 내려놓았다는 점에서 젊음이 누릴 수 없는 장점이 있다. 이제부터 나는 그걸 하나씩 누리며 살고자 한다.


  아름답게 늙고 싶다. 멋진 노인이고 싶다. 멋진 은발, 아름다운 미소, 비어있는 어깨, 다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 늙음도 젊음만큼이나 가치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여전히 욕심으로 가득한 세대를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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