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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주 Nov 02. 2022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

생각하는 우체통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를 때 나는 때가 되니까 배고프고 때가 되니까 배고픈 게 제일 화가 났다. 그렇게 달라진 게 없는 일상의 행위들과 감정들과 그럼에도가 고통스러웠다. 어머니가 안계시면 죽을 거 같았는데 나는 배고프고 떠들고 웃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세월호 참사가 있을 때 팽목항에 가서 그 전날 바다에서 들어올려져 가족을 만난 아이의 사연을 듣고 또 울고 있을 수 없는 일에 모르는 사람들과 슬픔을 나눴다. 그때도 일상으로 돌아와 나는 또 배고프고 웃고 떠들었다. 그런 일이 반복이었던 거 같다. 씨랜드화재 때도, 삼풍백화점붕괴 때도, 대구지하철 화재 때도, 세월호 때도.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배고프고 밥 숟가락이 입에 들어갈 때 내가 동물 같았다. 제 가장 가까운 식구의 죽음에 슬픔과 함께 파도처럼 밀려드는 식욕에 어이없었다. 허망하게 자식을 보낸 많은 부모는 나와 비슷한 감정을 얼마나 혐오스럽게 느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숨이 막혀 세상을 떠난 기막힌 아이들의 죽음에 나는 또 밀려오는 배고픔과 일상의 도돌이표에서 긴 한숨이 나온다. 왜 우리는 인간인가. 왜 생각하는 뇌를 가졌는데 늘 이렇게 헛헛한 상황에 빠지는가. 공부를 한 사람들이 생각이란 걸 안하는 괴물로 변하기도 하고 어수선함을 이용해 쓰레기를 줍기를 마다하지 않으려는 괴물과 여전히 그래도 삶은 계속되는 현실과 나와 그들과 저들이 다르지 않을까봐 끔찍한 하루를 또 견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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