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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주 Jan 10. 2023

진도개의 사랑 같은 걸 꿈꾸나요

사색하는 우체통

  개 중에는 평생 한 주인만을 섬기는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개가 진도개입니다. 두뇌회전이나 훈련 속도나 모든 면에서 진도개의 우수함은 여느 개가 따라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미국 경찰견 테스트에서 진도개는 매번 낙오합니다. 단 하나의 이유는 한 주인을 섬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핸들러라는 이름으로 개를 훈련시키고 일상을 함께 하는 사람이 바뀌면 진도개는 바뀐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말을 듣지 않으며 심지어는 제일 처음 만난 핸들러를 찾아 훈련소를 도망치기도 합니다. 진도개의 우수함을 알고 있는 한국인들은 매번 미국 경찰견 테스트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에 슬쩍 자존심이 상하다가도 이유를 듣고는 금세 시인합니다. 진도개의 그 특성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진도개처럼 나와의 관계가 평생을 가길 원합니다. 그 관계가 타인에 의해서 깨지게 될 때 큰 상처를 받곤 합니다. 반대로 내가 관계를 깰 때도 있다는 사실을 깜빡합니다. 나에 의해서든 상대로 인해서든 관계가 깨지면 우린 허망함을 느낍니다. 사람에게 쏟은 마음과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래 가길 바라는 건 바람일 뿐입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습니다. 꽃도 피면 지고, 열매도 맺으면 떨어지니까요. 하물며 너무나 다양한 사고와 감정을 가진 인간이 쉽게 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이성간의 사랑이나, 동성간의 우정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개 중에는 진도개처럼 한 주인을 섬기는 종류의 개보다는 다른 사람을 보면 좋아서 꼬리를 흔들고 새로운 사람을 따라가는 종류의 개도 있습니다. 사실 한 명의 주인을 따르기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개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가 인간과 더불어 살게 된 까닭은 그렇게 특성되어진 성격 때문일 테니까요. 


  얼마 전 티브이에서 '체크인 캐나다'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임시 보호했던 개가 입양된 곳인 캐나다에 이효리라는 가수가 찾아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간 헤어졌던 개들이 자신을 잠깐 보호했던 보호자들을 기억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납니다. 관계가 끊어진 다음 서로를 찾지 않는 인간들, 그리고 가슴 속에 섭섭함을 두고두고 쌓아놓고는 화해라곤 모르는 인간과 비교해서 얼마나 감성 풍부하게 표현하는지. 문득 21년을 함께 살다 떠난 나의 반려견 '바다'가 떠오릅니다. 푸들 종의 바다는 나의 힘든 시절을 함께 해준 나의 반려견입니다. 내가 힘들 때 나는 한 때 그 아이를 힘들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바다는 마지막까지 우리 가족으로 함께 있었으니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처음과 끝을 같이 하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내가 낳은 아이조차 내가 떠난 이후의 삶이 있고 그 아이들에겐 내게 오기 이전의 내 삶이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바다는 내가 낳지 않았지만 거의 처음과 마지막을 내 가족과 함께 한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 지내는 반려동물 이외에는 나 이전의 역사와 나 이후의 역사를 알 수 없는 관계들 뿐입니다. 꽃이 피고 지는 시기에 내가 그 꽃을 본 것만으로 의미가 있듯이 말입니다. 어쩌면 반려동물은 그래서 더 특별한지 모르겠습니다. 한 존재의 처음과 끝을 같이 할 수 있는 그 경이의 기쁨이라니. 그런데도 사람들은 때로 반려동물을 파양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니 쉽게 변하고 버리기까지 하는 인간이란 존재에게 진도개와 같은 충성심을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이겠지요. 그럼에도 우린 진도개와 같은 충성심을 바라는 어리석음을 반복합니다.


  가끔 정말 사이가 좋은 연인, 부부를 봅니다. 진도개처럼 한 사람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분들은 아주 특별하신 분들입니다.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쉽게 변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니까요. 1930년대 후반부터 하버드 대학의 졸업생들을 추적해서 부와 명예, 지적 능력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높다고 합니다. 소득은 75000달러 한화로 9000만원 이상부터는 행복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지적 수준도 행복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면 사이가 좋은 부부, 가족들은 분명 행복해 보입니다. 그들이 행복을 꾸미지 않아도 행복은 전염되기도 합니다. 굳이 수십 년의 세월을 연구하지 않아도 보이는 행복한 사람들의 비결, 서로에게 충실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을 함께 하는 내내 함께 하는 것을. 불행하게도 그런 분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점에서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과연 그런 사람인지. 바라는 것은 크고 나의 충성스런 마음은 쉽게 변하는 것은 아닌지.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진도개와 같은 충성심, 한 사람이라도 나와 맺는 관계에 진심과 충성심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변하지 않고 그에게 그 마음을 돌려줄 수 있을까요. 반성하게 됩니다. 진도개의 가치는 그가 이미 그런 마음의 자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을 원한다면, 나는 나의 마음부터 돌아봐야겠습니다. 나는 다정한 마음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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