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우체통
브런치를 시작한지 꽤 오래 됐다.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한지는 정말 오래 됐다. 2005년 경부터 시작했으니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브런치 북 출간 작가도 아니다. 첫번째 이유는 게으름이고 두번째 이유는 그렇게 되기까지의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2009년 무렵 나는 블로그에 있는 모든 글을 삭제해야 했다. 무단 음악 사용으로 누군가 고소를 했다는 것이었다. 합의금을 주고 그간의 모든 글을 삭제했다. 그즈음 음악저작권과 관련해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블로그는 동력을 잃어서인지 그 전만큼 충실히 쓰지 않게 되었다. 마음 내키면 글을 쓰고 음악을 구입해서 깔았다. 그렇지만 열정은 많이 사라졌다.
글을 쓰면서, 사진을 배우면서 사교적인 성격이 예술 활동에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예술적 능력과 창의력이고 그 다음이 인맥을 얼마나 폭 넓게 갖느냐, 선배 작가와의 라포를 얼마나 잘 쌓느냐도 관건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능력이 뛰어난 예술가였다면 아주 어릴 적에 발현되었을 거고 그때 이미 유명세를 탔을지 모르나 그렇지 못해 지금까지 무명으로 지내는 걸 보면 그건 노력으로 극복해야 할 일, 그래도 꽤 열심히 배우고 썼다. 그런데 사교적인 것은 쉽사리 되질 않는다. 나는 반골기질이 있어서인지 앞서간 사람들이 그들이 이룬 성과를 배경으로 후배들에게 대접받으려 하거나 명성을 이용한 갑질을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많은 분들이 훌륭한 인품으로 그런 일을 벌이지 않지만 그런 사람이 아예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 세상은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허용한다. 그것이 지적인 성취라면 더더욱이나. 물론 능력이 금전으로 환산되는 시대에 금력이 권력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까운 예술가가 세상을 뜬 뉴스를 접하면서 며칠 우울했다. 그가 이룬 성과가 그토록 쉽게 내동댕이쳐질 것인가. 사적인 그의 삶이 드러나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참아야 하고 수근거림을 듣는 것에 수치심을 견뎌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음을 선택한 그에게 잠시 마음이 겹쳐졌다. 삶의 무게가 너무 힘겨워 현실의 손을 놓고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반복했지만 그럼에도 다음날 아침의 해를 맞이하는 나의 비겁은 죽음을 가벼이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종교적인 영향이나, 내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나는 죽음을 선택한 한 예술가에게 가해졌던 수많은 조롱과 비난의 무게가 얼마나 무섭고 무거웠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가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기까지 노력했던 수만 시간의 힘과 위력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이나. 나는 게으른 사람이고 성공한 예술가에겐 그게 운이 되기까지 쏟았던 노력의 시간들을 너무나 잘 안다. 주변에 성취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예술가를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만 시간의 노력과 운, 나는 게으름 때문에 그 반의 반에 이르지 못해 포기하거나 쓰러져 투덜거리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벗어난 작업에 매달려 시간을 보내면서 나의 게으름을 탓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변명을 하는 것은 지난 시간이 게으름으로 점철된 시간이라 하더라도 아직까지 내가 다다르고자 하는 목표를 접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예술가를 험담하지 말자. 배우는 과정에서 내가 했던 그들에 대한 험담과 그의 작업에 대한 비난을 반성한다. 나는 여전히 그들이 도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풋내기이다. 어쩌면 내가 죽기 전까지 그들의 노력의 시간을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이미 그토록 오랜 시간 힘들게 노력했던 시간들을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난 한 예술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