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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주 Jan 24. 2024

'운명'에 대하여

생각하는 우체통

  얼마 전에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학교 다닐 때의 이야기가 나왔고 당황스런 과거의 기억들이 소환되었다. 좋은 이야기도 있었고 나쁜 이야기도 있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나를 향해 힘든 시기를 어떻게 견뎌냈느냐는 질문을 들었다. 아이들이 있었고 그렇게 살아지더라, 라고 대답했다. 덩굴줄기처럼 이야기를 시작하면 줄줄이 고생스런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정도 고통은 누구나 있는 거라는 걸 충분히 알기 때문이다. 고생 모르고 자란 사람들이 오히려 나이 먹어서 눈치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적당히 눈치를 챙길 정도로 고생을 겪었고 사람들과의 부침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으니 공감하는 것도 침묵하는 것도 대충 눈치로 챙길 정도는 된다.


  사주에 영향을 미치는 12신살은 삶의 좋고나쁨에 작용하여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다고 한다. 내 사주엔 화개살과 겁살이 있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있고 투자하는데 과감하지 못하고 어두운 밤길을 걷길 두려워하고 새로운 일을 할 때 선뜻 나서지 못하는 걸 보면 내 사주에 있는 화개살과 겁살이 제대로 작용하는 것 같다. 게다가 부모를 일찍 보냈으니 외로움을 타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지나치게 진지한 것도 이젠 이해가 간다. 화개살이 있는 사람은 철학에 심취하고 외로움을 숙명처럼 지닌 경우가 많아 수도자가 될 수도 있다고 하니. 사람들이 내게 사람을 좋아한다고 할  굳이 벌컥 벌컥 화를 낼 필요가 없었다. 외로움이 숙명이니 사람을 찾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그럼에도 심술맞게 얽힌 실타래 같은 내 삶의 문제들을 내 사주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풀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한다. 다행히 사주가 그렇다 하더라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도 있다는 부연 설명을 읽으니 안도하게 된다.


  과거에 손재주가 좋으면 팔자가 드세다고 했지만 요즘은 손재주가 많으면 돈을 벌 수 있다. 거기에 꾸준함이 있다면 부자가 될 수도 있다. 이전엔 집을 떠나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을 역마살이 있다고 해서 흉살이라고 했지만 이젠 여행을 업으로 삼고 사람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기꺼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전엔 도화살이니, 홍염살이니, 화개살이니 해서 기생이 되거나 망신스런 이성문제로 곤란을 겪는다고 말했던 사주는 이제 사람들에게 희노애락의 감정을 전해주는 연예인이 되기도 하고 예술가로 이름을 떨치기도 한다. 세상이 변하여 흉한 살이이었던 게 장점으로 부각되어 그것이 돈이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사주의 살이 나쁘다고 무작정 속상해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왜 점집을 찾아가고 주역을 공부하고 미래에 대해 굳이 알고 싶어할까.


  신춘문예에 당선한 작품이 이미 수차례 낙선한 작품을 다시 퇴고해서 당선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해엔 떨어지고 어느 해엔 당선한 작품의 차이는 무엇일까. 퇴고를 통해 흠결이 하나도 없는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었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결국은 운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때도 있다. 로버트 H 프랭크의 저서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에서 작가는 자신의 성공에 운이 얼마나 작용했었는지 실제 사례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었을 때, 테니스를 치고  심작발작으로 쓰러졌을 때 자신에게 운 좋게 기회가 주어지고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은 그저 세상의 법칙이 실력만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삶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성취가 쉽게 따라와주지 않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물론 우리가 간과하면 안되는 것은 운이 따르는 사람에게 노력이 아예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로또에 당첨되는 사람조차 매주 로또를 꾸준히 오랫동안 구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또는 금을 발견한 사람이 포기 없이  땅을 팠기 때문일 것이다. 부질없는 짓거리로 보이더라도 부단없이 나아간 사람들, 준비가 된 사람에게 기회는 운으로 작용할 것이다.


  사주를 보는 사람들의 심리 밑에는 나에게도 그런 운이 언제 올까 알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운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연되는데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 불안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도전과 모험으로 점철된 젊은 시기를 지나 어느 정도 안정된 노년의 삶을 당당하게 말한다. 그들의 그런 당당함을 항상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들은 한번도 안절부절하지 않았던 것도 같다. 그들에게 물어보면 어떤 답이 돌아올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운을 바라고 여전히 불안한 나의 심리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욕망이 숨겨져 있다. 요즘 유행하는 쇼펜하우어의 글 속에서 '동물과 인간을 비교해 보면, 현재를 마음 편히 아무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동물은 매우 현명하다'는 글에서처럼 인간은 현재엔 늘 그 욕망으로 고통스럽고 단순히 현재를 즐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이 불안은 그래서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위안이 될까.


  나도 사주를 볼 때가 있다. 요즘은 워낙 유툽에, 혹은 블로그에 만세력이나 사주풀이를 잘해놔서 만세력에 적힌 글을 갖고 풀이를 찾아본다. 앞서 언급한대로 내겐 겁살이 있어 매사에 조심성이 많은 것, 부동산이나 증권 같은 것으로 돈을 벌기에 내 심장이 너무 작은 이유도 설명되었고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는데도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시간과 열정을 쏟는 이유도 설명되었다. 나의 운명은 다른 게 아니라 보상받지 못하는 일에 여전히 내가 열정과 마음이 가닿아 있다는 것이다. 운은 그 다음 문제겠지. 운명이란 정말로 뒤에서 날아오는 돌멩이인지 모르겠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도록 애써야지, 내 운명을 탓하며 좌절한다면 정해진 내 운명에 무릎을 는 일이 아닐까. 나는 나의 운명에 좌절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내게 올 운을 기대하면서 살고싶다.  그 운의 열리는 시점과 내 노력의 시점이 교차점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들였던 내 공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내게 부끄럽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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