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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주 Nov 20. 2024

거짓말에 대한 생각

생각하는 우체통

   나는 거짓말을 잘 하는 아이였다. 물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아이는 아니었다.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에 나오는 진희 같은 아이였다.  '새의 선물'에 나오는 진희가 그랬던 것처럼 심각하고 치명적인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진희가 살았던 곳과 같은 열악한 곳에서 나도 살았다. 어쩌면 나도 진희처럼 웅숭깊은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가난했기 때문에 거짓말은 늘 화려했다. 가난을 근사하게 포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엄마가 처음으로 사준 잠옷을 외출복이라고 거짓말을 했을까. 바로 들통날 거짓말. 그리고 그때 함께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은 왜곡되고 윤색되어 이제는 꿈인지 농담인지 알 수가 없다. '새의 선물'에 나오는 문장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고 삶은 농담인 것이다'와 같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혼나지 않으려고, 더 잘 보이려고 했던 거짓말은 사실 무채색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나는 이제 더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어른이 되어서도 거짓말을 계속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사실 나도 거짓말을 여전히 하고 있지만 변명을 하자면 좋은 게 좋으려고 하는 거짓말이 많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하는 말은 대체로 거짓말이다. 약속에 늦는 친구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발을 밟은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한다. 사실 돌아서면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하고 욕이 나오려고 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그런 마음을 삼켜버린다. 그런데 어른이 되니 어릴 때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들이 너무 큰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곧 들통이 날 거짓말도 서슴없이 한다. 바보 아니야,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빠르게 들통이 날 거짓말을. 그들의 거짓말엔 해악이 있다. 사람들을 상처입히고 공동체를 망가뜨린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타성이 되어버린 것처럼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내성을 가지는 것 같다. 정말 그럴까.


   어릴 때 엄마는 하도 맞고 들어온 내게 '너도 좀 때려보라'고 했단다. 조용히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그 전날 나를 때렸던 아이를 이유도 없이 때리고 '엄마, 나도 때렸어'라고 내가 그러더란다. 엄마는 그런 나를 걱정했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너무 착한 건지, 아니면 부족한 건지. 그런데 때가 되어 글자를 쓰고 읽고 구구단도 남보다 빨리 외우는 걸 보고 머리가 나쁜 건 아니라는 걸 확인했단다. 왜 그랬나 생각해보니 그건 타고난 기질 같다. 아이들을 키워보니 똑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는데도 각각의 성격이 다 다른 걸 보면 확신하게 된다. 한 아이는 적당히 거짓말도 하고 지 걸 챙기는 아이고 한 아이는 거짓말을 죽었다 깨어나도 하질 못하는 성격이다. 거짓말을 할라치면 얼굴부터 붉어지고 말을 더듬는다. 그런데 한 아이는 거짓말을 참 잘 한다. 엄마 들을 때 좋은 소리도 잘 하고 혼날 일이 있으면 거짓말 변명으로 위기를 넘기기도 잘 한다. 그랬던 아이도 성장하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거짓말하는 사람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어릴 때의 행동은 타고난 기질로 그럴 수 있지만 우리는 하지말아야 할 것을 교육받고 스스로 체득한 삶의 철학과 소신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리라. 그럼 어른이 되어서 해악을 끼치는 거짓말을 하게 된 사람들은 왜 그럴까.


   거짓말은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편견이다. 사실만을 말한다면 세상은 너무나 혼란스러울 것이다. 관계를 맺는 우리들은 온전한 관계를 위해서도 거짓말을 한다. 또 분쟁을 막기 위해서도 거짓말을 하고 자신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도 거짓말을 한다. 하얀 거짓말이라느니 새빨간 거짓말이라느니, 거짓말에 색을 입히는 것도 거짓말이 무조건 나쁘기만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문제는 사실과 명백히 다른 거짓말을 반복하고 그것이 관계를 악화시키고 해가 되는 영향력을 끼쳤을 때다. 거짓 신념으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을 우리는 안다. 전쟁은 사실 거짓 선동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 거짓이 죽음을 낳는 비극. 과거엔 교육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 권력을 가진 소수만이 존재했을 때는 그런 일들이 가능했다.  정보가 많은 사람에게 열려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은 지금에 와서는 삿된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한해의 끝에서 믿을만한 사람이어야 할 사람이 순전히 거짓에 싸인 사람이었고 그걸로 이룬 명성이 얼마나 허망한지 확인하는 요즈음 아이들에게 우린 어떤 말로 어른을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네가 지금 만약 거짓말을 해도 세상은 사실을 안다고 해도 모른척 해줄 거야. 그러니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자라렴." 해야 할까.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또 거짓으로 만든 세상은 거품일 수밖에 없다. 남을 해하고 우리를 해하는 거짓말이 넘쳐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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