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수도미노

생각하는 우체통

by 이성주

아마추어가 극단을 운영하며 매해 공연하기는 쉽지 않다. 첫째 재원 마련이 어렵다. 둘째로 극단 특성상 단원 모두 직장에 다니는 관계로 연습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무엇보다 단원 수가 해마다 줄어든다는 것이다. 우리 극단도 올해로 15년째지만 첫해 함께 시작한 사람이 모두 일곱 명이다. 나머지는 중간에 새 단원 모집의 결과로 입단했고 몇몇은 곧 그만뒀다. 그럼에도 올해 12번째 공연을 올렸으니,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12번째 우리 극단의 공연작은 일본의 작품인 마에카와 도모히로의 '함수도미노'다.


지역민 10만 명 정도인 지방의 한 도시의 종합병원 바로 앞에서 큰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운전자 닛타와 그의 아내가 차량에 탑승해 있었다. 교차로엔 요이치가 길을 건너고 있었다. 그는 모자가 날아가며 신호가 바뀐 것을 감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닛타는 버스정류장 쉘터 타입의 광고판으로 요이치를 늦게 발견한다. 닛타는 속도를 늦췄지만 사고를 피할 수 없는 상태였다. 차의 속도는 시속 40km, '꽝' 소리와 함께 차량이 무언가에 부딪혔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이치가 다친 게 아니라 차량 조수석에 탑승했던 닛타의 아내가 크게 다친다. 그녀는 병원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간다. 연극의 시작은 이런 밑바탕에서 시작한다. 보험 조사원인 요코미치가 사고 목격자와 당사자들을 한 장소에 소집한다. 그녀는 사고 당일의 목격담과 사실을 증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고에 대한 명확한 인과는 증명할 길이 없다. 그때 마카베라는 목격자가 하나의 가설을 제시한다. '동생 요이치를 진심으로 걱정한 그의 형 사몬 모리오가 이 기적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마카베의 가설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마카베는 유효기간이 있는 신적 능력을 가진- 일명 '도미노'라는 능력자- 사몬 모리오가 그 사건의 결과를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 원인이라는 값으로 결과가 달라지는 함수, 그리고 도미노의 능력, 이 연극의 제목이 '함수도미노'가 된 이유다.


연극이 진행되면 등장하는 인물이 '마카베'에게 설득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불확실과 절망의 시대에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 신에게 아무리 빌어봐도 현실의 고통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이 희곡을 재밌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보험 조사원 요코미치와 마카베의 선배 오노, 본인의 노력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사몬 모리오, 부모와 떨어져 독립적으로 살고 있는 이즈미는 이 연극에서 현실적인 인물로 기적을 바라는 인물과 대비되어 등장한다. 일본 희곡이 한국적 정서와 다른 부분이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유사한 점도 있어 꽤 설득력 있는 대본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대본을 외우기도 힘이 들고 배우들의 열정을 높지만 연력이 높아지는 점도 우리 극단의 어려움이긴 하다. 그럼에도 부새롬 연출님의 작품 해석 과정과 디테일한 극 중 인물의 감정과 대사 분석, 주제를 드러내는 과정이 옆에서 보는 내내 놀랍기만 했다. 두 달간의 작업을 통해서 동선과 조명, 음향을 통해서 완성되어 간 작품은 우리가 설령 아마추어임에도 깊은 자긍심을 주는 연극으로 완성되었다.


연극은 흔히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배우와 무대, 그리고 희곡으로 만들어지지만 그 안에는 그것을 완벽하게 조율해 낸 연출과 조연출, 무대를 완성시켜 주는 조명과 음향,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무대는 아주 최소한의 것으로 채우지만 이야기의 힘을 통해 동시대의 문제와 철학으로 채운다. 내가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무대 위의 극 중 배역의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어느 연령대의 인물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배우로 연기한다는 것은 정말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다. 모든 것을 내레이션 하듯 보여주는 영상인 영화와는 또 다르다. 나는 연극이 정말 좋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내 역량의 한계도 안다. 아마 나는 열심히 배우의 연기에 박수를 치는 관객으로 열심히 다닐 것이다. 그리고 현실의 삶에서 잠시 꿈의 책장을 펴는 우리 극단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응원해 줄 것이다. 그들의 다음 연극도 기대할 것이다.


연극 '함수도미노'는 극단 라스에서 내년 2월에 재공연 할 것이다. 2024년 첫 공연에도 반응이 좋았던 이기쁨 연출의 '함수도미노'는 서울문화재단, 쿼드 초이스 '재연을 부탁해' 선정작으로 2026년 2.20~2.28일까지 대학로 극장 '쿼드'에서 공연한다. 많은 분들이 이 재밌고 흥미 있는 교통사고의 원인과 결과의 미스터리를 푸는데 함께 동참하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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