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우체통
"누구에게나 축제의 날들이 남긴 슬픈 흔적이 있다."
이 책에는 9편의 에세이와 소설이 혼재되어 있다. 하지만 작품이 에세이인지, 소설인지조차 읽다 보면 분명하지 않다. 그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맞이한 죽음이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다. 아름다운 묘사 때문에 에세이가 아닐까, 싶지만 소설적구성이라는 것을 확인하기에 그렇다. 이렇게 죽음과 이별, 상처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하는 작가는 누구일까. 그녀의 이름이 낯설다.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출판된 그녀의 첫 작품집이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책에 담긴 9편의 이야기는 반려 동물과의 이별, 재발한 암으로 고통 속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인물, 강도의 침입에 삽으로 그와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 화재가 난 집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 작가의 예술관 등 에세이와 소설이 섞여 있다. 표제작인 '축제의 날'들은 남편이 젊은 여자와 불륜을 저지른 걸 알게 된 후 친구 메리와 애리조나로 여행을 떠났던 일과 말기암으로 고통받는 캐시와 인도 여행을 떠난 내용이 교차되어 편집된 긴 에세이다. 자신의 사실적 경험을 소설처럼 쓴 이 작품은 그녀의 작품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는 파편적인 기억들이 잘리고 재배열되고 환기되면서도 그 여정의 목표지와 목적을 잃지 않고 죽음과 삶을 교직하며 이야기를 다진다. 우리의 기억이 이렇게 선형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작가는 이걸 집요하게 작품집 전체를 통해서 드러낸다. 작품집 제목의 '축제의 날들'은 살아있는 순간들이기도 하고 죽음을 맞이한 순간이기도 하다. 일상의 빛나는 순간들과 생사의 경계에서의 균형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셰리'라는 작품과 '당신이 찾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라는 두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셰리'라는 작품은 이미 암투병을 했던 여성이 전이된 암으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통증으로 고통스럽게 사느니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두 딸과 친구의 조력을 받아 조력자살을 선택하는 여정 중 그녀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소년이 스쳐가는 장면에서 삶의 모든 순간들이 얼마나 빛나는 것인지를 조명한다. '당신이 찾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라는 작품은 제목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은 스티븐이란 과학자와 조앤이란 여성이 만나기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스티븐은 사랑에 번번이 실패한다. 그를 떠나는 여자들에게 스티븐도 별 감흥이 없다. 그에겐 아이코라는 반려견이 있다. 그는 아이코에게 각별한 감정을 느낀다. 어쩌면 그가 여성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맞는 여성을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날 그가 마련한 파티에 조앤이라는 여성이 찾아온다. 디어드리라는 스티븐 여친의 친구다. 서로 상처를 갖고 있는 두 남녀가 파티에서 만나기까지 그 둘의 사연을 앞부분과 뒷부분에 나뉘어서 다루고 있는 작품이 제목과 딱 들어맞는다.
이 작품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단속'이란 작품 속의 예술을 특히 문학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다. '우리의 사고방식은 우리가 보는 거의 모든 것에 의해 무감각해지고 지루해진다. 저녁 시간을 전자기기에 빠져 지내다 보면, 인간 경험과 감각의 전반을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 경험과 감각으로부터 예술(문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통찰을 전달할 새롭고 놀라운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려면 통찰력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생각해야 하며, 그러려면 삶에서 예술을 창조해야 하고, 문장 하나하나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전달해 독자를 놀라게 해야 한다. 화려한 언변을 통해서가 아닌 지성과 강력한 상상력, 그리고 절대로 독자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통해서.' 이 단락을 통해서 보여주는 작가의 진지함이 이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어쩌면 그녀의 문학을 대하는 태도는 삶의 태도와 마찬가지리라. '축제의 날들'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진심과 죽음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렇다. 나 역시 작가라면 자신의 작품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의 반의 반이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배신을 반복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독자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이 작가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작품이 주는 무게감은 요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쉽고 가볍고 휘발성 강한 언어의 홍수 속에서 진지하게 죽음과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미국에서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그렇다고 한다. 특히 창조적 논픽션(Creative Nonfiction) 분야의 선구자이자 거장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일부 비평가들은 비어드의 글이 선형적인 시간에서 벗어나 과거와 현재, 기억과 상상을 넘나드는 방식이 그녀의 스타일적 특징이자 강점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간의 혼란스러움"이 오히려 감정선과 사건을 더 깊이 탐구하게 만들고, 독자를 능동적으로 참여시킨다고 하니,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