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체통책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클라리사가 아침에 꽃을 사러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날 밤 열리는 파티까지의 하루를 따라간다. 그러나 이 소설의 핵심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의식의 흐름'이다. 표면적인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진동과 복잡한 사유다.
클라리사는 겉으로는 활발하고 사교적인 중년 여성으로, 성공한 정치인 남편과 함께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하루를 스쳐가는 기억과 생각들은 젊은 시절의 선택, 놓쳐버린 기회,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파티를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자신과 타인 사이의 거리감과 삶의 덧없음을 느낀다. 화려함 안에 자리한 공허함은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낯설다. 그녀의 내면을 좇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의 중심이 흐려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현재 서울에서 성공한 결혼을 한 여성의 하루를 영상처럼 따라가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클라리사와 교차되는 또 다른 인물, 젊은 참전 용사 셉티머스 워렌 스미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환각과 정신병에 시달리는 셉티머스는 사회와 단절된 채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다. 그리고 파티가 열리는 날 저녁,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은 클라리사의 삶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지만, 동시에 삶과 죽음이라는 극단적 장면을 통해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단조롭고 무감각하게 흐르는지를 되묻게 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어떤 통찰을 전달하려 하지만, 독자인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클라리사는 파티 도중 셉티머스의 죽음을 전해 듣고 깊은 동요를 겪는다.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 삶과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긴다. 소설은 셉티머스의 죽음이 클라리사에게 존재의 감각을 더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음을 암시하지만, 독자가 그 각성의 깊이를 온전히 따라가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이 소설은 이후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The Hours'와 이를 영화화한 작품에서 보다 입체적으로 재구성된다. 영화에서는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 책을 읽고 삶에 깊은 회의를 느끼는 로라 브라운, 그리고 현재 뉴욕에서 친구를 위해 파티를 준비하는 클라리스 본. 버지니아 울프는 작중에서 누구를 죽일 것인가를 두고 남편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결국 그녀는 현실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로라 브라운은 생일 케이크를 만들면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소설 속 클라리사에게 깊이 빠져든다. 클라리스는 친구 리처드를 위한 파티를 준비하지만, 리처드는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고, 클라리스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허감에 잠긴다. 버지니아, 로라, 클라리스로 이어지는 이 '시간들'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무력감과 존재적 회의를 보여준다. 여성은 질문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삶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성공한 남자의 후광 속에서, 그가 제공하는 안락함에 기대어 살아야 했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
조 앤 비어드의 '축제의 날들'에서처럼 여성도 삶을 격렬하게 느끼고, 고통을 체감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질문하는 존재다. 여성은 스스로 존재를 묻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어떤 이는 성공한 남자와 함께 안락하게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삶이 정말 그런가? '인형의 집'의 노라는 은행 총재의 아내로 살 수 있었지만, 자신이 남편의 아내가 아닌 하나의 장식물, 인형으로 살아왔음을 깨닫고 집을 떠난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에 가다' 속 수전 역시 마찬가지다. 변호사로 성공한 남편, 어린 자녀들과의 일상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수전은 결국 스스로 선택한 공간, 19호실에서 죽음을 맞는다. 이는 존재를 묻는 여성의 고통이 단순한 불만이나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기만의 방'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유의 공간과 경제적 독립이 필수라고 말한다. 사유한다는 것은 자신을 존재하게 만드는 핵심 조건이다. 이는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책 '비밀의 방'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몇 해 전부터 유행한 '남편에게 동굴을 허락하라'는 조언은 남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성에게도 자신만의 공간, 사유의 방이 필요하다. 삶이란 단지 흐름에 몸을 맡기고, 욕망과 사회의 기준에 기대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가치를 향해 질문하는 과정이다. 부자가 되는 것, 성공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 정말로 현명한 선택일까? 돈을 좇다가 자신을 잃은 이들의 삶에는 어떤 공허가 남는가? 솔로몬이 했다는 말처럼,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