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우체통
식물의 생존 방식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산수국의 이야기를 들으니 식물도 생각한다,라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우리가 산수국의 꽃이라고 알고 있는 화려한 별모양의 보라색꽃은 실제로는 꽃받침입니다. 산수국은 꽃이 너무 작아서 매력이 없으니(?) 벌이나 나비를 유인하지 못합니다. 꾀를 낸 산수국은 화려한 꽃모양 꽃받침으로 벌과 나비, 파리 등을 유인해서 수정을 합니다. 수정을 이끌어낸 꽃받침은 자기 할 일을 다하고 빳빳하게 쳐들었던 고개를 숙입니다. 화장술로 자신의 얼굴을 아름답게 꾸미는 여성처럼요. 생존을 위해서 나름의 전략을 꾀한 것입니다. 2000년에 출간된 차윤정 님의 '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모르는 식물들의 생존과 번식, 그리고 존재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의 반응을 알 수 있습니다. 베토벤의 강렬하고 불규칙적인 음에는 불안감을 느끼고 바흐 음악의 규칙적이고 조화로운 음이 식물에게 더 긍정적인 반응을 준다는 사실을 책에서는 말해줍니다. 그 책은 우리가 모르는 식물의 생명력과 존재하기 위해 나름대로 표현하는 식물의 세계를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생각하는 식물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이번에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이란 곳엘 다녀왔습니다. 수목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백두대간과 고산지역 산림생물자원을 수집. 보전. 전시. 활용하여 생물 다양성을 증진하고 다양한 관람 및 교육 체험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2017년 5월 17일 자로 출범한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소속기관입니다"라는 소개글이 나옵니다. 수목원에 가지 않은 분들에게 수목원의 규모를 말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직접 가서 확인해 볼 것을 권합니다. 아시아에서는 최대 규모, 전 세계에서 남아공에 있는 국립한탐수목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목원이라고 합니다. 보통의 수목원이 화려한 꽃을 장식해서 반겨주는 풍경이라면 이곳은 확실히 다릅니다. 산속에 있는 수목원은 규모에서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광릉수목원도 이에 비하면 작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곳에는 노르웨이 스발바르 섬에 있는 시드볼트(종자 은행)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종자 은행이 있습니다. 노르웨이에는 주로 사람들의 식량이 될 종자를 보관하고 있다면 이곳 봉화의 시드볼트는 고산지대의 식물을 비롯 우리의 산과 들을 채우고 있는 각종 식물들의 종자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기후 위기든, 핵전쟁이든 인류 멸종의 순간에도 이 지구가 다시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기본이 되는 것들을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베리아와 봉화의 합성어로 봉베리아라는 재미있는 별칭이 있는 이곳은 겨울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곳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추운 곳이 군사분계선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봉화는 한 겨울에 영하 22도까지 떨어지는 곳입니다. 서울에서 진 벚꽃을 봉화에서는 보름 후에 다시 볼 수 있습니다. 대신에 단풍은 이곳 봉화가 먼저 시작합니다. 산과 산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백두산에서 태백산, 소백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한 이곳이 제겐 너무 큰 감동을 줍니다. 근본에 충실하고 본질을 지키며 이곳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수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입니다.
앞서 차윤정 님의 책 '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라는 책에 보면 우리가 식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얼마나 없는지 알게 됩니다. 식물은 서로에게 해충의 침입이나 가뭄 같은 위험 신호를 보내거나, 특정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번식을 돕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합니다. 공기 중으로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방출하여 이웃 식물에게 경고하거나 곤충을 유인하기도 합니다. 또 동물처럼 어미 식물이 어린 식물에게 영양분을 전달하거나, 빛을 가려주는 등 보호하는 행동을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어린 식물의 성장을 돕는 이타적인 모습도 보여줍니다. 마치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모성애와 비슷하다고 설명합니다. 온실과 같은 환경을 생장 환경이 제한적이라고 느껴 종족 보존을 위해 죽기 전에 최대한 많은 꽃을 피워 씨앗을 남기려고 합니다. 생각만 해도 놀랍지 않나요? 유튜브에는 식물의 반응을 관찰한 실험 영상도 있습니다. 한 사람은 식물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고, 다른 사람은 모욕적인 말을 반복합니다. 그 결과, 식물은 위협을 느낀 쪽에 더 강한 전기적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생명이 반응한다는 사실, 놀랍지 않나요?
인류는 이 지구상에 가장 고등한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제 인공지능이라는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존재를 만나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가장 고등한 생물이라 생각했기에 함께 공생하는 존재에 대해 인간이 함부로 했던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식물도 인간이 아닌 동물도 없었다면 인간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이 지구는 그들이 먼저 주인으로 살았었고 인간이 후에 이 지구의 손님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차지하는 시간은 굉장히 짧다고 합니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문명이라는 이름하에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위기입니다. 다행인 건 위기에서도 생명체가 유지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일을 대한민국에서 하고 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의 먹거리가 요즘 부쩍 부각되고 있습니다. 척박한 곳에서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던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대단합니다. 식용 가능한 식물을 찾아 그 독성을 제거하고 먹을 수 있는 지혜를 발견했던 선조들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근본을 지키면 생존할 수 있다. 식물이 스스로 생존의 방법을 터득했듯 우리 조상도 산이 70프로에 달하는 이 척박한 지형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나는 수목원에서 희망을 봅니다. 어떤 절망의 순간이 오더라도 인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산과 산이 어깨를 나란히 한 깊은 산속의 수목원은 향 짙은 상쾌한 바람이 폐 깊숙이 들어와 가슴을 펴게 합니다. 식물도 척박한 환경에선 스스로 자살이란 걸 생각한다고 차윤정 님의 책에 적혀 있습니다. 물론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고 뿌리를 깊이 내리거나 잎을 크게 하거나 줄기가 가늘거나, 선택하지만 인위적으로 생장을 방해하는 환경이 될 때 선택하는 길입니다.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사람도 많지만 그에 비례해서 이 세상의 가치를 깊이 깨닫고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쩌면 이익을 위해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부귀가 잠깐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잠을 자는 건 근본을 지키고 사유하는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요. 식물은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생존을 위해 방법을 찾습니다. 우리 인간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들로부터 배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에 놓여있으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