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들

by 이성주

가끔 머릿속이 복잡하면 차를 몰고 나가서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기도 하고(사실 목적지가 없는 건 아니다. 도착한 곳에서 할 일이 없을 뿐이지) 나중에 몰아서 구입해도 될 자잘한 살림용품을 사러 상점에 가기도 한다. 카페에 가서 책을 읽기도 하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커질수록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몇 시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해서 머릿속이 비어지진 않는다. 특히 생각이 많은 날은 더욱 그렇다. 책이 위로가 되고 혼자 보는 영화가 그나마 머릿속의 수선스러움을 잠재운다. 그건 해결되지 못할 질문들을 그나마 책이나 영화의 묵직한 주제가 생각을 정리해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들에게 자꾸만 상처를 받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100점짜리로 설정해 놓고 살았던 게 잘못이다. 사실 그들을 만나며 그들의 인간적인 결점이나 문제점들을 모르는 것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가진 점이 그런 단점들을 상쇄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들의 실수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아니다. 믿음을 갈가리 찢는 그들의 행위 때문이다.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서 문제점을 발견한다. 누군가 나를 미워하는 이유도 그들에게 내가 신뢰감을 찢는 어떠한 행위를 했을 것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로 상처받고 상처받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개선하기 위해서 반성한다. 그러나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자기반성과 상처받은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떤 사람들은 어릴 때나 했던 거짓말이나 간교한 속임수, 윤리나 법규에 반하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한다. 문득 이렇게 반성하며 사는 내가 바보인가, 이렇게 사소한 분쟁 때문에 상처받고 고민하는 내가 문제가 있는가 생각하게 된다.


요즘은 텔레비전 보기가 싫다. 사소한 거짓말한 것도 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허장성세한 것은 없는지 스스로를 반성했던 나 같은 사람이 너무 어리숙한 게 아닌가 싶다. 인면수심의 강철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널린 세상이 버겁기만 하다. 물론 그런 생각으로 나의 하루를 채울 필요가 없다.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걱정하는 기우는 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나쁜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것이 그것과 같다. 그럼에도 간혹 한가할 때 접하는 뉴스나 유튜브를 통해서 알게 된 사건들은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을 기운 빠지게 한다. 한국 사람들에게만 있는 '화'가 달리 생긴 게 아니다. 유난히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많은 한국인의 성정상 자신의 배경만 믿고 거짓과 사기, 권력에 기댄 부정부패로 얻은 부로 떵떵거리는 사람들은 '화'를 돋운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유독 미안하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생활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저축하고 알뜰하게 사는 게 무용한 게 아닌가, 절망하게 하는 일들을 접하면 더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건 그 무엇도 그럴 수 있다, 고 생각하면서다. 어떤 불의한 일에 화가 나다가도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니 그럴 수 있다, 고 생각하는 순간 어디까지 그것들을 허용하는가에 생각이 미친다. 결국 아무리 다양성이 존중되어도 용서될 행위가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그리고 다수의 피해자를 생산하는 일에는 엄격한 처벌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맞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각각에게 맞는 일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심지어 네덜란드 같은 곳은 성매매조차 합법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고 사람들이 갖는 편견에 맞서는 그들만의 태도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회에서 허용하지 못하는 범죄는 그 사람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받을 건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한 굉장히 기본적인 삶의 룰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양성이라고 봐줘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린 지금 잠깐 이 지구, 이 나라의 국민, 시민으로 살다 갈 뿐이다. 내가 머물던 자리를 그 후에 올 사람을 위해 함부로 사용하지 않듯 내 후에 올 후대의 자손들을 위해 최소한의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 전쟁후에 독일이 그토록 끊임없는 반성과 사과를 한 것은 독일의 미래를 위해서다. 지금 독일이란 나라가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이유는 그런 태도 때문이다. 부디 다양성이란 옷으로 뒤집어쓰고 이 사회를 혼탁하게 하는 범죄자들에 대해 관용을 베풀지 말았으면 좋겠다.


역시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아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쓰고 나면 마음이 풀리는 게 아니라 더 마음이 무겁다. 혼잣말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정의에 목말라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에 희망을 걸어본다. 어쩌면 삶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잘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보며 이런저런 잡생각에서 벗어나려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식물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