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대하여

생각하는 우체통

by 이성주


아주 어렸을 때는 공부가 놀이처럼 느껴졌다. 친척들이 모여 또래 사촌들끼리 누가 한글을 뗐는지, 누가 구구단을 먼저 암기했는지, 누가 책을 잘 읽는지 경쟁하게 했다. 나는 또래 사촌보다 글을 일찍 뗐고 구구단도 일찍 암기했다. 아마 그때 들은 칭찬이 독이 되었던가, 아니면 일찍 학교에 들어간 게 사달이 난 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산수가 어려워진 데다 3학년 때 전학 후 적응이 힘들었던 나는 꽤 고전을 했다. 일 년을 그렇게 내버려 둔 엄마가 과외라는 걸 시켰는데 그때 과외선생님의 지도 방침은 책 한 권을 몽땅 외우는 식이었다. 중요한 단어에 괄호를 치고 괄호 안에 들어가는 단어를 외우는 방법이었다. 성적이 잘 나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서운 아버지도 싫었는데 틀릴 때마다 한 대씩 회초리를 때리는 선생님이 싫어 얼마 가지 않아 과외를 그만뒀으니까. 그런데 그 방법이 꽤 실효성이 있었던 것 같다. 함께 공부한 친구들은 꽤 성적이 좋았으니까.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 후 또 한 번 어려워진 수학을 만났다. 당연히 성적은 떨어지고 그렇게 수학과 멀어질 뻔했는데 중2 때 만난 과외 선생님이 꽤 쉽게 수학을 가르쳐주셔서 다시 한번 기사회생했다. 중요한 건 선생님이 수학을 재밌게 가르쳐줬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즐거우면 몰입하고 즐겁지 않으면 쳐다도 보지 않는 나쁜 버릇이 있다. 성적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신경 쓰면 쭈욱 올라간 성적이 하기 싫어 방치하면 뚝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성적을 받았다. 그래도 책을 좋아했던 나는 책 읽기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도 책을 좋아해서 그 친구와 함께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막 컴퓨터가 보급되는 시기에 컴퓨터 용지에 빽빽하게 우리가 직접 쓴 소설이나 영화 대본의 주인공 이름을 나열하거나 줄거리를 쓰면서 놀았다. 그 습관과 꿈이 어쩌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온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왜 어릴 때 공부해야 하는지 요즘 더 여실히 깨닫는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건 공부란 끝이 없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내가 학교 다닐 때와 그때 열심히 했던 과목들은 지금 내 기억에 남아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현상, 용어, 사자성어 같은 기본 지식을 채워주는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은 너무나 큰 변화를 거쳤다. 컴퓨터가 보급되었고, 휴대폰, 인공지능 등 내가 학교에서 공부할 때와 지금의 환경은 너무 다르다. 나는 수학만 공부했지만 요즘은 컴퓨터도 배워야 하고 과거에는 국어를 고전과 현대문학만 배웠지만 지금은 비문학도 포함된다. 아이들은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더 잘해야 한다. 그런데 과거의 공부도 그렇지만 지금도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학습을 공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공부에 대한 가장 유명한 말은 논어에 나온 말일 것이다. '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論語』 「學而」' 학교 다닐 때 배운 이 글귀는 나이를 먹고 책을 한 권 읽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때마다 느끼는 기쁨이다. 가끔 '과학을 보다'라는 유튜브를 보는데 그것 때문에 일부러 물리학 일반인들을 위한 서적- 이를테면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 같은 - 을 읽기도 한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물리학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것이 수학이란 언어로 표현되었다는 걸 알게 되자 수학이 다르게 느껴졌다. 수학을 포기했던 나의 이른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었던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물론 그때 깨달았다고 해서 내가 더 잘했을 거라는 확신은 없다. 살면서 새로 알게 된 지식이나 삶의 지혜를 통해 기쁨이 커진 것은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성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미 학교 다닐 때 그런 걸 이해하고 실행한 사람은 분명 똑똑한 사람이 맞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똑똑한 사람들이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업을 얻은 후 상당수가 더 이상 공부라는 걸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들의 흥미는 다른 것으로 옮겨갔기 때문일 것이다. 돈 버는 것, 권력을 취하는 것, 부자가 되어 남이 누리지 못하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 명예를 얻는 것 등, 그들이 목적으로 하는 것이 공부가 아닌 다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얻은 성공이 지속적인 공부와 이후에도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안타까운 건 계속 배우고 익혀 기쁨을 누리기보다 힘들고 어렵게 공부해서 취한 지위와 금력을 더 이상 자신의 성장에 투자하지 않는 사람도 상당수라는 것이다.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알게 된 지식은 자신이 부족한 걸 더 느끼게 한다. 세상은 너무나 신기한 게 많고 내가 모르는 것투성이다. 사람은 남의 구린내는 잘 맡지만 자신의 인분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고 한다. 그와 대비되는 말로 깊은 산속의 난초는 향이 깊고 진해도 스스로 향이 짙은 줄 모른다고 한다. 학문이 깊은 사람을 깊은 산속의 난초에 비유한 퇴계 이황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진정한 군자의 자세, 이것이 진짜 공부가 추구하는 목표라는 것이다. 사실 삶의 목적이나 목표는 각각이 다를 수 있다. 그 무엇이 옳다고 그르다고도 말할 수 없다. 세상에 같은 얼굴, 같은 지문이 없듯 각각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적어도 세상에 남보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들은 조금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건 내가 사람에 대한 기대에서 오는 쓸모없는 바람일지 모르겠지만.


공부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깨닫는다. 학창 시절 공부를 더 열심히 해 좋은 대학과 직장을 얻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성과일 뿐,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게 하는 것임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세상의 수많은 생물 중 내가 아는 이름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은 원인과 결과로 풀어낼 수 있는 수수께끼이며 새로운 언어를 알게 되면 여행의 재미가 더 크다. 또 삶을 깊이 있게 고민하고 읽다 보면 인간과 자연, 지구의 지속성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아니 어쩌면 지식으로 그것을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저 해가 뜨고 지는 일부터 식물의 씨가 땅에 떨어져 잎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나무가 되는 자연의 섭리로부터 배우는 큰 깨달음도 공부이다. 침묵 속에서 우리의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는 지혜, 이누이트 족이 말없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태도처럼 말이다. 그런 공부가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지 알게 된다면 떠들며 내세우는 학문보다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책방에서 책 한 권을 사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게 가장 쉬운 공부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책 한 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그래서 내게 부족한 걸 깨닫게 되는 지혜 한 방울을 습득할 수 있다면 그나마라도 멈추지 말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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