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스마일

영화 읽는 우체통

by 이성주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영화 '귀여운 여인'을 개봉했을 때 나는 극장에서 그녀의 큰 입으로 짓는 미소부터 눈에 들어왔다. 시원하고도 명쾌한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 짓게 하는 얼굴이었다. 행복하고 즐거운 표정을 떠올리라고 하면 단연코 줄리아 로버츠의 미소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영화에서 그녀가 맡은 비비안 워드는 창녀였지만 태생적으로 그녀의 외모는 길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성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전형적인 미인이 아니었다. 코 끝은 휘었고 입은 지나치게 컸다. 눈망울이 큰 눈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름다웠고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큰 키에 입는 옷마다 그녀의 분위기를 한껏 돋보이게 했고 멋스러움과 뭔가 표현하기 어려운 부티가 났다. 당연히 창녀역인 비비안 워드에서 아름다운 상류사회의 여성으로 탈바꿈해서 M&A 전문가 에드워드 루이스에 걸맞은 여성으로 바뀔 수 있었다. 그렇게 줄리아 로버츠라는 여성은 다른 할리우드 여성 배우과 같은 스테레오 타입의 모습이 아니었다. 진보적이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으로 비쳤다.


'모나리자 스마일'이란 영화는 그런 줄리아 로버츠가 맡기에 딱 맡는 역할 같다. 이미 오래전에 개봉한 영화인데 다시 한번 영화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스테레오타입의 여성을 바라는 사회, 그것을 최선의 목표로 삼는 여성이 가득하다는 건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성이 자신의 이름으로 성공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리라. 대기업의 여성 CEO나 국제기구의 여성 대표,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오히려 진부한 얘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공한 여성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던 노력은 아마 남성이 했던 노력과 비교 불가일 수 있다. 더 많은 실적, 업적, 성과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미 성공한 여성이 다수인 이 시대에 왜 영화로 만들어졌을까.


모나리자 스마일이란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이다. 미국의 유명 여자대학인 웰슬리 대학은 1870년대 설립, 1875년에 개교했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취지하에 '헨리 듀란트'에 의해 설립된 웰슬리 대학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이나 미 국무장관이었던 '메들린 올브라이트'와 같은 여성이 졸업한 명문대학이다. 진취적이고 똑똑한 여성을 위한 교육의 장이었던 웰슬리 대학은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영화에서처럼 똑똑한 남성의 부인이 되는 여성이 졸업하는 대학으로 취급된 면도 있다고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유리 천장에 막혀 스스로 성공할 수 없다는 벽에 부딪친다면 똑똑한 남성의 내조자로 그의 성공을 뒷바라지하는 역할도 나쁘진 않았을 것 같다. 그 일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성공한 남편(주로 정치인, 법조인)의 부인 역시 해야 할 역할들이 많았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학교에 현대적 이미지가 강한 캐서린 왓슨이란 캘리포니아 출신 미술사 강사가 부임한다. 첫 수업에 교재 한 권을 이미 다 읽고 출석한 제자들, 똑똑하고 현명하며 성실하기까지 한 제자들은 첫 수업의 긴장으로 어리바리해 보이는 캐서린을 단번에 KO패 시킨다. 첫 수업의 실패로 온전히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짜서 다시 교실에 들어선 캐서린에게 제자들은 조금씩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미 자신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아는 여성들인 이들도 좋은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여성은 능력 있고 명망 높은 집안 남자를 만나는 게 최선이라고 주입받는다. 그들의 어머니도 그렇게 결혼하고 남편의 성공으로 취득한 지위로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커스틴 던스트가 맡은 베티 워렌의 어머니가 그렇다. 대학 이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그녀는 딸 베티도 자신과 같은 길을 가도록 강요한다. 일종의 가스라이팅과 비슷하게 딸에게 영향을 끼치는 엄마로 베티는 논리적이고 단아한 문장을 구사할 능력을 진보적 성향의 교수나 임직원을 비난하는 글로 소모한다. 줄리아 스타일스가 분한 조안 브랜드윈은 법조인이 되길 꿈꾸지만 그녀 역시 하바드 출신의 토미와 결혼할 것을 꿈꾼다. 그런 그녀에게 예일대 로스쿨을 진학하는 걸 제안하는 캐서린. 캐서린은 미술사를 가르치지만 현대 미술의 전위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제자들이 스스로의 삶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제시한다.


1950년대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 속에서 현대적인 이미지인 줄리아 로버츠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으로 보인다. 흡사 시간여행으로 과거로 간 여성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지나치게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캐서린은 이사회에 골칫거리가 되는 건 당연했다. 결국 그녀의 임기 연장에 대해 회의를 거치고 그들은 수많은 요구를 덧붙여 임기 연장하겠다고 통보한다. 하지만 캐서린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그간 가보지 못한 유럽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학교를 떠나는 날 그녀를 배웅하는 제자들, 그녀들은 자신의 삶,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라고 제안했던 캐서린 교수의 가는 길을 자전거를 타고 배웅한다.


영화는 가상의 이야기고 실제로 웰슬리 대학은 영화보다 훨씬 뛰어난 여성 인재를 발굴하는데 노력했으며 퓰리처상 수상자인 마가렛 클렌시가 총장이었던 시절인 1950년대에 그녀는 진지한 학문 공동체로서 웰슬리대학교가 성장하는데 기여함으로써 좋은 아내를 배출하는 대학이라는 이미지를 탈바꿈시키기도 했다. 영화는 사실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시나리오가 작성되었지만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똑똑한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영화에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실제로 여성과 남성의 두뇌 격차는 없다고 한다. 어느 분야에 더 탁월한 역량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능력의 차이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부 여성은 스스로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과 싸워 지위를 쟁취하기보다는 성공한 남성의 아내로 지위를 쟁취하는 것을 선택한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르고 그것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쟁취한 지위보다 쉬운 일일지 모른다. 또 그것도 능력일지 모른다. 그러나 모나리자 스마일스의 베티가 결혼과 동시에 외로움과 남편의 외도로 인한 극도의 불안 상태를 겪듯 쉽게 얻은 길은 그만큼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미모와 날씬한 몸매도 능력이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목표를 갖고 어떤 사회적 위치를 취득하고 싶은지 잘 아는 것도 능력이다. 예일대 로스쿨에 합격한 조안은 당장은 남편 토미를 따라 펜실베이니아로 옮길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현명하기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게 스스로의 몫이라면 다시 공부할 것이다. 그녀는 그런 능력이 충분히 있으니까. 또 엄마로 산다는 것,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도 공부하고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독립적이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자율적 권한을 부여하는 현명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 무엇을 선택하든 여성도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미래이면 된다. 그건 남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이름을 알리는 것만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로 기억되는 것도 성공하는 것이다. 우린 성공의 정의를 너무 이름에만 부여하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스토리가 잘 짜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영화가 끝나고 나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우리는 나의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 내가 찍은 사진마다 보이는 미소는 진심을 담고 있는지. 모나리자 스마일, 그 미소는 진짜 행복에서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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