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우체통
우연히 '어른이 못된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유튜브를 봤다. 여러 항목의 설문이 있었지만 내 시선을 끈 건 30살 서른의 남성과 1994년생 여성이 생각하는 표준에 대한 생각이 드러나는 설문이었다. 출연자는 열 명, 여덟 명이었기 때문에 그 세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화면 속에서 대답하는 그들의 생각은 지금 서른 중반으로 향해 가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 유튜브에서는 서울대 출신의 출연자들도 있어 그들이 생각하는 서울대생의 표준도 엿볼 수 있었다. 질문에 답하는 젊은이들의 솔직한 답변을 보고 있으니 표준에 대한 내 생각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재밌는 건 출연자들도 그 동영상을 보는 나도 내가 속해있는 현재의 생활 범주에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표준을 객관화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닌 나 중심으로 세상으로 보고 판단한다는.
서른 살 남자의 시선에서 표준에 놀라운 건(이 설문이 3년 전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봐야 했다) 소득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고 학력에 따른 표준 소득이 너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연애를 바라보는 시각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꽤 달랐다. 서른에 결혼을 한 사람도 있었고 연애를 한 번도 못해본 사람도 있었으니 세상을 살아가는 현재의 서른 살 남자의 경험의 차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가 서른이었을 때를 돌아보게 되기도 했다. 그건 여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굉장히 주관적이지만 여성들의 답이 남성들보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생각이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한국에서 여성으로 현실의 벽에 부딪치며 살면서 깊어졌는지 모르겠다. 물론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벽을 느끼며 살아본 적 없는 남성, 여성은 이 설문에서 제외되었을 것이고 그 동영상을 보며 느낀 나의 감상 역시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표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현실과 표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표준 모두 틀리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표준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표준은 일반적인 것, 평균적인 것을 말한다. 표준의 첫 번째 의미는 사물의 정도나 성격 따위를 알기 위한 근거나 기준이다. 두 번째 의미로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것에서의 평균과 표준은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평균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사물의 질이나 양 따위를 통일적으로 고르게 한 것을 말한다. 표준이 조금 더 추상적이고 평균은 구체적 수치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우린 두 개의 단어를 눈앞에 제시했을 경우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령 서울에서 사는 30대의 표준이나 평균은 지방에 사는 30대의 표준이나 평균과 다를 수 있다. 영어에도 있는 표현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와 같이 사람은 현재의 나의 상태와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고 그건 표준에 대한 착시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동질감과 끈끈한 유대감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편향성의 유려도 가져올 수 있다. 그건 같은 채널의 서울대 출신의 사람들의 표준을 봤을 때 확실히 드러난다. 30대 남성의 표준과 서울대 출신의 표준 갭은 상당히 크다. 일단 소득 수준에서 차이가 크다. 서울대 졸업생에 한해서 표준을 정한 것이니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대부분의 대졸 연봉을 자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게 생각하겠지만 보통의 30대가 생각하는 연봉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렇듯 표준도 평균도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 시선은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편향성에 대한 우려가 기우이길 바란다. 하지만 자칫 비슷비슷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거나,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이 모이면 편향성의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높은 곳에 올라야 전체를 볼 수 있다.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깔딱 고개를 올라야 한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힘겨운 영역을 지나서야 내가 평지에서 보던 풍경이 얼마나 평면적인지 보인다. 사람들은 다양한 색깔과 소리와 향이 있다. 그들을 통해서 바라보는 세상은 내가 속한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다르다. 나와 격차가 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어려움 때문에 비슷비슷한 사람만 만나는 건 편안하겠지만 시각은 좁아질 수 있다. 아니, 나와 비슷한 사람과 굳이 관계를 맺거나 우정을 나누지 않아도 된다. 표준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가지면 된다. 스스로 내가 하는 생각이 정말로 요즘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생각인지, 나와 채널을 달리하는 사고의 사람들의 논리를 들여다 보고 책을 읽고 나와 다른 생각의 사람들의 모임에도 가보고 토론해 보면 어떨까.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다. 스스로 질문하게 되면 찾아보게 되고 찾다 보면 다른 목소리도 들리고 그것의 논리에 수긍하게 되면 다른 삶도 보이지 않을까. 표준 속에 있을 때 나는 편안할지 모르지만 표준 밖의 세상에 대한 편견은 더욱 깊어질지 모른다. 세상엔 표준이란 없다. 손가락의 지문이 모두 다르듯 다른 생각과 다른 색깔과 다른 조건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