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여유를 만끽하기 위한 식사를 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허겁지겁 위를 채우기 위해 식사한다.
어디서 왔는지, 누가 요리했는지, 향의 차이, 섬세한 차림,
혀끝에 닿는 미감의 차이가 분명하더라도
실제로 혀끝에서 느끼는 감각은 ‘맛있다’와 ‘맛없다’의 차이.
부자의 고가 의상과 액세서리는 그렇지 않은 사람의 부러움을 얻는다.
부자의 고상한 말투는 그렇지 않은 사람의 욕망을 부채질한다.
그러나 부자가 함부로 내뱉는 말과 저급한 말투와 궁색한 어휘만을 내뱉는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경멸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부자는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기 쉽다.
주변에 늘 사람이 있어, 혼자 있을 때의 감정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부자를 추앙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물질과 그가 걸친 의류가 내뿜는 가치,
그리고 절대 따라갈 수 없는 말투, 배려에서 나오는 품위에 있다.
품위를 가장한 옷을 입고 거친 말과 빈곤한 언어만을 구사한다면, 내면을 덮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다.
손바닥 뒤집듯이 겉과 안이 다른 행동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걸친 옷이 남루하더라도 내뿜는 기운이 품위가 있고
말하는 어휘가 풍부하며, 침묵을 지킬 때와 말할 때를 알고
손끝의 따스함으로 꽃을 피우듯 웃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이는
경멸을 경험하지 못한다.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지 못한 부자는 쉽게 경멸할 수 있어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자신을 경멸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경멸은 눈과 행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경멸은 품위 없는 사람을 봤을 때 내면에서 상승하는 감정이다.
부자는 자신이 경멸하는 사람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혼자 있을 때에서야 고립감으로 실감한다.
고립감은 허무로 오고, 허무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그래서 부자에게 있는 시간적 여유는 허무로 채워지기 쉽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나를 마주하는 일이야말로
허기를 채우는 식사처럼 허무를 채우는 여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