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성주

이사를 했다. 건물을 빠져나가면 바로 집 앞이 지하철 입구였던, 번화한 길에 있던 주상복합의 아파트에서 경기도의 한적한 동네로 옮긴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줄어든 잠으로 아침 6시면 눈이 떠진다. 거실 창문을 열면 새소리가 먼저 공간 안으로 침입해 들어온다. 몇 마리인지, 몇 종류의 새들이 있는지, 각기 다른 새들의 지저귐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소리에 익숙해 있었다. 이 소리로 아침잠이 훼방을 받아왔다. 지방에 살던 때였다. 그런데 이 소리가 꽤나 그리웠던 모양이다. 새들의 목청 높인 소리가 반갑기만 하다.


글을 쓸 때면 나는 곧잘 음악을 틀어놓곤 한다. 백색소음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이사를 한 후에는 일부러 음악을 틀어놓지 않는다. 잊고 있었던 새소리를 듣고 싶어서다. 거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유치원이 있는 공원이다. 그곳에 다니는 원생들은 좋을 것 같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차가 다니는 길까지 걷지 않아도 산책할 곳과 놀 공간이 있으니까. 뜨거운 물을 머그 컵에 담아 창밖을 보고 있으니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하며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무용 백을 메고 짙은 색의 정장을 입은 사람의 걸음이 빠르다. 또 다른 사람이 지나간다. 한적한 골목이라 지나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지만, 이른 시간과 아이들이 등원하는 시간은 다르다. 이전의 집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사뭇 다르다. 지하철 입구로 빠르게 사라지는 사람들, 수많은 차들, 삐죽삐죽 솟은 건물들, 창문을 열 수 없었던 소음, 더 묘사할 것이 많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창문을 열 수 없었고 내다볼 수가 없었다. 백 미터가 채 되지 않은 곳에 마주하는 건물에서 내가 쉽게 노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많은 차들이 내는 경적과 바퀴 굴러가는 진동과 소리들 때문이었다.


가끔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이야기들을 sns에서 접하게 된다. 이사하고 싶은 선택지의 두 곳 중 어디가 더 나을지 비교해 달라는 글, 혹은 풍경을 찍은 사진을 두고 동네에 대한 평가, 혹은 예쁜 카페와 맛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동네에 대한 평가는 대충 두세 가지다. 가격을 비교해서 평가하기, 인프라가 주 내용이다. 부동산이 자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의 다수의 사람들에게 부동산 가치는 중요하다. 또 인프라도 중요하다. 연령에 따른 삶의 요구들, 아이들 학교와 학원, 병원 같은 것들은 포기할 수 없는 환경이다. 어쩌면 내가 경기도의 한적한 곳으로 이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 중에 '건축탐구 집'이란 흥미로운 방송이 있다. 건축가들이 찾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집이 방송의 중심에 있다. 그 프로그램을 잘 보는 이유는 프로그램이 선택한 집이 아니다. 그 집에서 사는 사람들 때문이다. 80이 되어가는 한 여성 출연자는 삶의 마지막을 보낼 곳이라며 이십 년 가까이 살게 된 집에 애정을 표현했다. 집을 지은 방식도 독특했다. 나무로 보를 얹고 바람이 지나가는 틈을 만들어서 태풍에도 비도 견딜 수 있게. 나무와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지어진 집은 이십 년 가까이 탈이 없었다고 한다. 삶의 결이 어떠했는지 보여준 그분의 철학이 아름다웠다. 어떤 사람들은 '저런 오지에서 어떻게 살아',라고 할 수도 있다. 내려놓음으로써 가능했던 삶, 나는 그분의 내려놓은 삶에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살면서 가장 힘든 건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의 다른 말은 힘 빼기고. 예술도 결국 힘빼기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된 사람에게 들은 말 중 가장 중심은 힘 빼기다. 군인들의 숙면 습관 중 하나가 몸에 힘을 빼는 일이라는 걸 들은 적 있다. 빼곡하게 여러 명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에서 잠에 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다. 불면의 처방이 몸에 머리에, 눈에, 코에, 입에, 어깨에 힘을 빼는 일이라고 하니.


집은 힘을 빼고 쉬는 곳이다. 꽉 죄었던 목의 단추와 벨트를 풀고 느슨한 옷으로 갈아입는 곳,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과 식사를 함께 하고 살을 비비며 사는 곳이다. 어쩌면 집이, 가정이 단단한 이유는 힘을 빼고 쉬는 곳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경제적 가치와 인프라로 힘을 '빡' 준 집에 느슨하게 옷을 입고 널브러지듯 내려놓지 않는다면 집도 불면에 시달릴지 모른다. 불면에 시달리고 우울에 빠지고. 나는 요즘 새로 이사한 집에서 9시간을 잔다. 그동안 불면에 시달렸던 게 다 거짓말 같다. 몸과 마음에 힘을 '빡' 주고 살았다가 이제 조금씩 힘이 빠져나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침의 새소리를 듣고 일어나 글을 쓸 생각을 하고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몸에 힘을 빼는 일, 내려놓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어쩌면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일지도. 내 집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아. 쉬이이익~~~~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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