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영향으로 최소한의 사람을 만나고 필요한 장소만 방문합니다. 많은 만남이 전화와 sns 혹은 문자로 이어집니다. 현실에서 만나는 어려움은 줄어들지 않는데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힐링의 시간은 점점 줄어듭니다. 이럴 때 주로 이용하는 것은 음악과 독서입니다. 또한 깊이 생각하기입니다. 사실 깊이 생각하기는 피곤한 작업입니다. 요즘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시대엔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게 오히려 정신건강에는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책을 통해서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게 되면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학과 영화, 음악 등 모든 종류의 예술의 생명력은 이토록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에게 더 큰 의미를 주었습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올덕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1차 세계대전의 종식 후 1932년에 출간되었고 조지 오웰의 '1984'는 2차 세계대전의 종식 후인 1949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폐허에서 인간은 재건을 해야 한다는 당면 과제를 받아들고 어떠한 미래를 꿈꾸었을까요.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고 삶의 터전을 허무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또한 독재와 인종차별은 인간의 본성, 본질에 대한 회의를 가져왔을 겁니다. 그 안에서 작가들은 인간에 대한,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의 끝이 무엇일지에 대한 사유가 있었겠지요.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이 재앙 앞에서 우리는 포스트 감염병의 세계에 대해서 말하고 고민합니다.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관성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다분히 회의적인 결과지들을 읽습니다.
이제 세계는 열려 있던 문을 닫을지도 모릅니다. 필수적인 물건들은 자체 생산하려고 할 것이며 감염병 유입이 가능한 나라를 차단할 것이며 어떤 감염병이 새로 창궐할지 모르니까 서로의 거리를 넓힐 것입니다. 이전에 관계에 대해서 우린 그리워할 것이며 이것 역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현상으로만 공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감염에 대한 대비책으로 면역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사람들의 관심사가 될 것이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자녀 출산을 고려하게 될지 모릅니다. 현재는 더욱 소중해질 것이며 미래에 대해선 더욱 암울한 예언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모든 예술은 언제나 미래를 예측하며 희망을 말합니다. 물론 불안이나 절망을 예측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래도 오늘은 계속되는 현재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그립니다. 어떤 작가를 관객, 관찰자, 독자들이 선택할지는 모릅니다. 오로지 작가는 오늘도 자신의 작업을 이어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예술가의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조지 오웰처럼, 올덕스 헉슬리처럼 예술가는 또 다른 미래에 대한 사유를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들 작품에서처럼 너무 암울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