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랍을 보여줄게

by 이성주

생각하는 것을 다 표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하더라도 머리 속에서 한번쯤 걸러냅니다. 내 머리 속에 들어있는 거름망은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보일지, 그것이 미래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먼저 걸러내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면 많은 얘기들을 혼자 삭여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외로움은 사실 여기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 얘기든 먼저 이야길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지요. 한 친구가 제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먼저 내 서랍을 열어 보이면 상대도 그러더라고. 그런데 살다 보면 나만 바보같이 내 서랍을 열어 그 안 깊숙이 있는 것까지 보여주고 나서 상대가 꼭꼭 닫고 열어주지 않는 서랍에 대해 마음 아파한 경험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과는 오랜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이 듭니다. 관계는 서로가 평등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대부분의 관계들을 보면 시소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되다보면 공중에 떠 있는 사람의 몸이 묵직하게 땅을 딛고 앉아있는 사람에게로 쏠립니다. 급기야는 땅에 있는 사람에게 몸과 마음이 다 갔다가 상처만 입는 경우가 왕왕 있지요.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수평적인 관계는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않은 채 있습니다. 살다 보면 어떤 게 정답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 사랑한 사람이 후회가 없다 합니다. 관계란 좀 더 불편하고 상처가 있다 하더라도 어쩌면 후회없이 몸과 마음을 기울였던 쪽이 아무래도 더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외로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마음을 드러낸다는 것은 관계의 저울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먼저 마음을 열기를 원하고 그렇게 했을 경우 자신을 조금 드러내는 경우가 많지요. 물론 이건 개인의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합니다. 관계란 정답이 있는 것처럼 많은 책에서 말하지만 서로가 자라온 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자그마한 트라우마들이 그 정답을 조금씩 빗겨가게 합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은 게 관계 같이 느껴집니다.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 침묵이 유지돼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 갑자기 말을 건네도 놀라지 않는 사람, 손만 잡고 있어도 무언가가 통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무엇을 가진 것보다 행복할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또 혼자 있는 시간을 그리워할 것도 같습니다. 인간이란 여전히 연구하기에 좋은 대상이고 완전한 세계가 완전한 인간이 없기에 불가능한 것처럼 인간의 심리는 여전히 밟지 않은 영역처럼 물음표의 지역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신이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영역을 신에게 물으면 되니까요. 생각하는 것을 굳이 모두 표현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하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그렇다면 오늘은 나에게 생각나는 것들을 단어만이라도 글로 써보면 좋을 거 같습니다. 사실은 내가 내 얘기를 가장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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