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았던 이민 정착이야기 2
온라인 커뮤니티에 짧은 글 하나를 남겼다.
“거지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업체 이름은 단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고, 감정에 북받쳐 쓴 자조 섞인 말 한마디였을 뿐인데,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이민 서류를 맡겼던, 흔히들 말하는 ‘이주공사’ 측으로부터 법적 대응 절차를 하겠다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내 글을 캡처한 사진과 함께.
나는 곧바로 글을 삭제했지만, 그날 밤 우리는 감정이 섞인 SNS 메시지를 밤새도록 주고받았다. 결국 마음속 깊이 되뇌게 된 결론은 단 하나였다.
“세상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오직 나 스스로만이 나를 지킬 수 있다.”
출국 전, ‘패키지’라는 이름의 이주공사 상품은 마치 해외 취업부터 정착까지 전부 도와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믿음은 그저 내가 너무 간절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고용주는 ‘이주공사’가 아닌 ‘나’를 보고 채용을 결정했던 것이었고, 내가 잡오퍼를 받기까지의 수많은 노력은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이주공사는 단지 서류를 대행하는 기관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에게 내 고용주에게 먼저 연락해 주고, 빠르게 절차를 진행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바보처럼, 누군가 내 편이 되어주길 바랐다.
이력서를 100군데 넘게 보냈고, 면접도 수십 번 다녔다. 드디어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잡오퍼를 받았고, 워크퍼밋을 위한 LMIA 기간 동안 ‘벌룬티어’로 먼저 일을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고용주는 연락을 주겠다고 한 뒤, 한 달 넘게 소식이 없었다. 이러다 다른 취업 기회까지 놓칠까 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자주 연락하면 부담을 줄까 걱정되면서도, 간간히 이메일을 보내 안부를 묻고 벌룬티어 시작 여부를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연락드릴게요.” 뿐이었다.
하루는 너무나 지친 마음에, 근처의 절벽 바닷가로 나갔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 멍하니 앉아 망망한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정신줄을 놓으면, 정말 그 바다로 뛰어들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광활한 바다 위 조그맣게 떠 있는 유조선을 보며, 마치 세상에서 나 혼자만 외롭게 표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거센 바람에도 뿌리내리고 억세게 피어난 민들레처럼, 나도 그렇게 버텨야 한다고.
고용주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여름 내 아이들과 함께 딸기 농장에 다녀온 딸기를 들고 데이케어에 인사를 남기기도 했고, 처음으로 케이크를 구워 안부와 함께 전하기도 했다. 내 방식으로, 나의 진심을 알리고자 애썼다.
하지만 여름이 저물어 갈 무렵, 내 통장 잔고도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플랜 B를 꺼내야 할 시간이었다.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그래서 커뮤니티에 그 한 줄, “거지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는 글을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글 하나로 이주공사와 갈등이 깊어졌고, 나는 결국 환불 관련 계약서를 하나하나 다시 뜯어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또 절망했다. 받을 수 있는 돈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 돈으로 한국에 돌아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앞날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였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머리를 싸매고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누워 생각했다.
‘실패자가 되어 돌아갈 수는 없다.’
‘거지꼴로 돌아간들, 우리가 다시 발 붙일 곳이 있긴 한가?’
결국 나 자신을 다잡았다.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오직 나 자신만이 우리 가족을 이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