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문이 열리다

쉽지 않았던 이민 정착이야기 3

by Helena J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열 부씩 출력해 들고, 구글 지도를 켜서 내 거주지 주변의 데이케어들을 모두 검색했다.


그동안 이메일로만 이력서를 보내왔다면, 이번에는 직접 이력서를 돌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코로나 이후라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캐나다에서는 오프라인으로 이력서를 돌리는 방식이 꽤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취직한 사례들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구인경로는 페이스북. 지금도 SNS를 통한 인맥 기반 채용이 활발하다.


가장 많은 정착 자금을 쓴 것은 내 중고차였다. 출근할 데도 없이 주차장에 세워두기만 했던 그 차를 끌고, 나는 주변 데이케어들을 하나하나 방문하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전하며 인사를 건네고, 현재 채용계획이 있는지를 묻고, 간단한 대화 내용을 수첩에 기록했다. 그렇게 이틀째 되자, 꺼졌던 의욕과 희망이 다시금 살아났다. 몸을 움직이자, 내 뇌는 현실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고 나는 나를 다시 믿기 시작했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세로토닌 수치는 신체 활동, 사람과의 접촉, 자연 속 시간을 통해 높아지고, 이는 우울감을 완화시킨다고.


아마도 이틀간 계속된 야외 활동과 사람과의 짧은 대화들이 내 세로토닌 수치를 올렸던 것 같다. 바다 절벽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을 때의 무기력함과는 다르게, 지금 나는 다시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방문했던 곳들의 홈페이지를 다시 찾아 온라인으로도 중복 지원했다.


이틀 후, 두 곳에서 면접 연락을 받았다. 그 중 한 곳은 이미 한국인 이민자를 고용해 영주권까지 지원했던 경험이 있던 곳이라 더욱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계속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저를 고용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그분은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조용히 센터 한 곳을 언급하며 “내일부터 거기서 벌룬티어 시작하세요.” 라고 말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바로 그 센터에 가서 인사를 드렸다. 면접을 예정했던 다른 데이케어에는 정중히 이메일로 사양의 뜻을 전했다.


그렇게 나는 벌룬티어를 시작했고, 곧바로 LMIA 구인 광고를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LMIA 승인이 떨어지고, 정식 워크퍼밋을 받아 합법적으로 캐나다에서 급여를 받고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첫 직장이 되었던 이 동부 지역의 데이케어에서 나는 3년을 일했고, 팬데믹 시절도 무사히 견디며 마침내 영주권까지 받았다.


이민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자산도 없이,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싱글맘의 몸으로,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땅에서 처음부터 홀로 시작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고된 일이었다.


당시 나에겐 워크퍼밋이 있는 사람, 혹은 기러기 가족으로 남편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분들이 참 부러웠다.


한국에서부터 탄탄히 준비를 해온 나였기에, 워크퍼밋만 있었더라면... 아니면 누군가 경제적으로 단 몇 달만이라도 나를 도와줄 수 있었더라면, 그 몇 개월은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나는 해냈다.


무자본, 무비자. 맨땅에 헤딩하듯 캐나다 땅을 밟았고, 내 손으로 워크퍼밋을 얻었고, 이제는 영주권자가 되어 캐나다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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