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인생 리셋 1
나는 과거에도 지금도, 이혼 후 두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한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나의 직업은 유아들과 하루를 함께하는 유치원 교사다. 어느덧 캐나다 이민 5년 차. 40대 중후반을 지나 이제는 ‘50’이라는 숫자를 바라보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늦은 나이에 이민을 결심해, 40년 넘게 살아온 나라를 떠나 이곳 캐나다에서 지내며 나는 과연 무엇을 얻게 되었을까?
가장 큰 변화는, ‘이혼가정’이라는 선입견 없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내 부모님은 서로를 특별히 아껴주시는 분들은 아니셨지만, 큰 갈등 없이 ‘그냥 자식들 때문에’ 참고 사시는 전통적인 부부였다. 그래서 나는 한부모 가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어린 시절엔 한 번도 고민하거나 체감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중학생 때,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엄마가 사라지신 적이 있었다.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주시던 엄마가 보이지 않던 그날, 그 공허함이 너무 컸다. 학교에 가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책상에 엎드려 조용히 흐느껴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엄마는 며칠 만에 돌아오셨고, 고등학생이 되어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엄마가 나를 위해 참고 살아주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이혼을 했다. 그것도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란 존재가 사라졌을 때,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아빠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러 모습으로 드러났다.
어느 날 저녁, 아이들과 공원에서 농구를 하던 아저씨들을 바라보던 중, 한 남성이 내 아들에게 물었다.
“아빠는 어디 있니?”
아들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빠는 도망갔어요.”
그 말이 아이 마음속 ‘이혼’에 대한 정리였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위해서’ 이혼을 참고 살아간다. 또, 이혼을 하더라도 주변에 쉽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가 함께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듯 여겨진다.
내가 이혼했을 당시, 그리고 아이들이 아주 어렸던 그 시절, 우리는 아빠 없이 외출하거나 여행을 다니는 것 자체가 주목받는 일이었다.
지나가는 이들은 물론, 아이 친구들까지 아빠의 존재를 물었다. 반복되는 질문은 아이들을 위축시키기 충분했다.
가족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 사진사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먼저 말했다.
“우리 아빠는 회사 가서 없어요.”
한 번도 시킨 적 없는 말이었다. 아이는 자신을 보호하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자라났다. ‘아빠가 없는 아이’라는 상처를 극복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대답을 준비하며 유년기와 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담담하게 ‘이혼했다’는 말을 꺼냈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 스스로도 입을 닫게 되었다. 반복되는 질문과 불편한 반응, 무례한 시선들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또래의 엄마들과 만남을 가져도, 관계가 깊어질수록 집안 사정이 노출되기 마련이었다. 나는 항상 적당한 거리에서 선을 긋고 그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다.
아빠와 주말부부인 척 거짓말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분위기를 감지하게 되면 그 관계를 끊어야만 했다.
이처럼, 한국에서 싱글맘으로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나도, 아이들도 마음 한구석에 늘 어두운 그림자를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이었다.
캐나다에서 만난 한국인들조차, 아빠의 존재에 대해 너무 자연스럽게 묻는다.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의 사고 속에는 ‘가족은 아빠, 엄마, 아이들’이라는 정형화된 구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다르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도 직장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고, 그들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 부모가 이혼해 아이들이 한 주씩 아빠와 엄마의 집을 오가는 것도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직장 동료들도 스텝대디, 스텝맘, 새로 생긴 형제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다양한 가족 구성원이 일상 속에 존재하기에, 타인의 가족사에 대해 깊이 묻거나 고정된 기준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나 자신으로서 더 솔직하고 편안할 수 있다. 나를 이혼녀가 아닌 것처럼 꾸미지 않아도 된다.
그 자유와 심리적 해방감, 그게 바로 내가 캐나다 이민을 결심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