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부드러웠지만, 뉘앙스는 날카로웠다

by Helena J

길게 적힌 자기소개, 잔뜩 붙은 이모티콘들, 여러 장의 사진.

나는 그의 프로필에 ‘좋아요’를 눌렀고, 그는 바로 수락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늘 긴 답장을 보냈다.


말투는 부드러웠고, 문장 사이마다 조심스러운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우리는 바로바로 대답을 주고받는 대신 하루에 한 번씩 서로가 시간이 될 때 편지를 교환하듯 대화를 이어갔다.


그 템포가 참 좋았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그는 식물 이야기를 자주 했다.


꽃 이름도 잘 알고, 어느 날엔 벚꽃나무 아래 차를 세워두고 흩날리는 꽃잎을 한참 바라봤다고 했다.


그 말을 읽는 순간, 나에게도 그 장면의 기분이 전해졌다.


서울의 벚꽃 아래를 걸으며 웃던 시간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산책하다가 찍은 꽃 사진을 보내주었다.


50살이 된 내가 50살 남자에게 꽃 사진을 보내는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나기도 했다.


채팅을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페이스북에서도 친구가 되었고, 그 덕분에 사진을 주고받는 일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계정은 대부분 비공개였고, 가족사진 몇 장과 전 여자친구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찍은 여행 사진 정도만 남아 있었다.


타임라인에는 SNS 개인정보 보호를 강조한 글이 올라와 있었다.


아마 사생활 정보 침해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 사진을 거의 올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유튜브를 보여줬을 때 그는 “한번 봐볼게요.”라고 말했지만 그 뒤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약 2주쯤 대화를 이어간 뒤 그가 만나자고 했다.


그가 '데이트'라고 언급했다.


시간은 오후로 정했고, 바다를 사랑하는 그는 해안공원에서 보기를 원했다.


나는 바닷가 공원은 아직 춥다며 하이킹 트레일이 있는 공원을 제안했고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공원의 주차장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그는 오렌지색 스포츠카를 타고 왔다.


사진 속에서 크게 보였던 키는 생각보다 작았지만 표정은 부드러웠다.


우리는 호수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산책 중간에 벤치에 앉아 대화를 이어가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Helena J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유튜브 채널 '짠내짱양'의 콘텐츠 크리에이터입니다.

8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2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작가의 이전글백인 남자가 동양인 여자를 찾는 이유가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