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나 스스로에게 하는 인터뷰를 준비하며 나는 오랜만에 과거를 꺼내 들었다.
10년이 넘은 이야기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신용카드 발급 자격이 안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캐나다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신용카드를 발급받았고, 지금까지 잘 사용해 왔다.
그리고 이제, 그 카드를 다시 서랍 깊숙이 넣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이혼을 했다.
갑자기 혼자가 된 나는 월세비, 생활비, 두 아이의 모든 것을 혼자 담당하게 되었다.
머릿속으론 계산이 되었다. 문화센터 프로그램들을 더 이상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어느 날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더 이상 너희들을 좋아하는 문화센터 프로그램에 데리고 갈 수가 없어."
그랬더니 당시 세 살이었던 아들이 담담하게 말했다.
"엄마 괜찮아. 우리는 그냥 놀이터 가서 놀면 돼."
아이의 그 차분한 말투가 오히려 나를 향한 위로처럼 들렸다.
아빠는 갑자기 사라졌고, 엄마는 항상 우울해하는 상황을 어린아이가 나름대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멈출 수가 없었다. 엄마로서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을 계속 문화센터 프로그램에 데리고 다녔다.
무이자 할부 3개월, 6개월, 12개월... 카드는 그렇게 내 형편을 모른 척하게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도구였다.
한강에서 하는 무료 자연생태 프로그램, 도서관의 저렴한 생태학습 프로그램들을 몇 년 동안 아이들과 다녔다.
특별히 학습을 시키는 학원을 보내거나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조기교육, 창의 프로그램이 중요하다는 나름의 교육관을 가지고 있었고, 아이들의 창의활동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혼자 벌어서 월세비, 두 아이의 교육비, 생활비를 감당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카드 사용 금액이 점점 늘어났다.
3개월 무이자 할부로 결제했던 교육비들이 누적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큰 금액으로 한 번에 다가왔다.
두려움이 컸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당장 카드 청구서의 금액을 기한 내에 갚지 않으면 카드는 연체가 되는 것이고, 하나가 연체되면 다른 것들도 다 연체될 것이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일들이 걱정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온라인으로 검색하다가 개인회생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상담을 받았다. 카드 사용 금액, 집 보증금을 위해 은행에서 받은 대출, 형편이 안 좋아서 동생에게 빌렸던 개인 채무까지 전부 합쳐서 개인회생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더 이상 한국에서 카드 발급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작년에 잠시 한국에 방문했을 때, 충전식 버스카드 사용이 번거로워서 후불식 버스카드를 알아봤다. 그런데 그게 신용카드 기능이 함께 있어서 나는 발급 자격이 안 된다고 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어쩌면 "더 이상 신용카드 발급하지 말고 형편대로 살아라"는 뜻이겠구나 싶었다.
카드 사용을 할 수 없어서 받은 월 수입의 현금만으로 생활했던 그 시절, 때로는 정말 두루마리 화장지 한 통 살 돈이 없어서 동네 언니에게 얻어 쓴 적도 있었다.
한 달치 출퇴근비를 계산해서 충전식 버스카드에 충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떨 때는 그 버스비가 부족할 때가 있었다. 동료에게 천 원 빌려서 집에 온 적도 있었다.
다행히 그 당시 다녔던 직장이 안양천을 따라갈 수 있는 곳이었다. 여름이니까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번 해보자 싶어서 시작했다. 아침 출근길은 기분이 좋았지만, 도착하면 온몸이 땀으로 젖어서 그 땀 냄새가...
저녁 퇴근길은 조금 어둑어둑했는데 안양천에 날벌레 떼가 너무 많았다.
얼굴에 달라붙고 눈으로 들어가서 어쩔 수 없이 어둑어둑한 저녁에 선글라스를 끼게 되었다. 하지만 선글라스는 그렇게 많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눈과 선글라스 사이로 날벌레들은 여전히 날아들었고, 눈으로 들어가는 날벌레들 때문에 많이 울었다.
캐나다로 이민 온 후, 개인적인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지 1년이 넘었다.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조금씩 생활비 압박이 오기 시작했다. 특히 매월 다가오는 카드 대금이 큰 부담감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10년 전처럼 그렇게 두렵진 않다. 비상금인 저축통장이 있으니까.
카드 사용을 하지 않고 현금으로만, 형편에 맞게 살림을 하자. 카드값을 더 이상 걱정하지 말고, 내가 딱 써야 하는 금액만 직불카드를 통해 지출하자.
되돌아보면 과거에 고정 수입이 있었던 그 시절에도 수입이 들어오는 만큼 지출을 그만큼 했다. 그게 가장 지금 후회가 된다.
물론 지금은 여유 자금이 부족해서 지출을 통제하기 시작했지만, 지금 다잡은 이 마인드를 나중에 재취업해서 고정 수입이 생겼을 때도 계속 유지한다면, 일정 부분만 생활비로 지출하고 나머지는 저축과 투자로 올인한다면, 나의 노후는 행복하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직불카드 인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솔직히 신용카드를 자르지는 못하겠다. 나한테 단 하나밖에 없는 카드이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우선 신용카드는 장롱 깊숙이 고이 모셔두려고 한다.
좋아하는 코스트코도 가능하면 적게 가는 걸로 했다. 코스트코에 갔을 때는 신용카드를 써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가 거래하는 은행에는 마스터 직불카드가 없어서,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그 마스터 신용카드는 고이 모셔두고, 모든 생활비는 직불카드로 사용하려고 한다.
내가 다시 신용카드를 쓰기 시작했던 것처럼, 우리는 언제든지 살면서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남들이 정해준 한도에 내 인생을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 안에서 내 미래를 계획하는 그런 기분, 여러분도 함께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영상으로 만나는 짠내살림 이야기
https://youtu.be/UgW5A60j4EA?si=4NgzjvXFgGNNRJ6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