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가족으로부터의 스트레스 해소법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주변에 온통 화사한 꽃들과 화창한 나무들이 우거져서 바라만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런 것이 바로 감성이란 것 이겠죠.
우리 가족에게도 따사로운 봄 햇살이 비추어지는 듯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시작한 캠핑. 아이들이 어렸던 시절로 다시 우리 가족이 돌아간 것처럼 아이들은 캠핑을 하는 동안 그리고 다녀와서는 예전보다는 표정이나 언어가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바람이 한번 지나간 후에야 이 따뜻한 봄 햇살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듯이 아직까지는 아주 가끔씩 다시 한번씩 우리 집에 폭풍우가 내리칩니다.
어느 날 새벽잠에 어렴풋이 빠졌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깨서 일어나야 했습니다. 늦은 새벽까지 잠을 안 자고 있던 두 아이의 감정적 소란에 잠에서 깨어 아이들을 진정시켜야만 했습니다.
새벽 3시 30분. 다음날 출근을 위해 다시 잠자리에 들기 위해 수면보조제를 먹게 만드는 나의 아들들.
그동안의 경험으로 아이들은 스스로 서로에게서 격리되어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 후 스스로의 감정을 진정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변화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만드니까요!
집. 가정. 가족은 가장 평화롭고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이런 공간에서 서로 가장 아껴주고 이해해 주고 사랑해주어야 할 가족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밖에서 받은 어떠한 스트레스보다도 그 깊이가 더 깊고 아프게 다가옵니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고 말을 꺼낸다고 해도 내가 받고 있는 감정만큼 이해받기 힘든 가족 안에서의 가족 간의 스트레스
이 스트레스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나만의 방법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향초를 피우고 향을 맡으며 감정조절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은 나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춘기 아이들의 현재의 감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내 몸을 움직여서 전신 근육을 스트레칭해 주기
아침저녁으로 또는 정말 시간이 없을 때는 오전에 한번 해주는 전신 스트레칭으로도 내 몸의 긴장이 이완되고 기분이 조절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근육을 늘려줌으로써 몸의 피로도를 완화시켜 주는 것과 동시에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숨호흡이 마음속을 차분히 만들어 주기 때문이겠죠.
집안청소를 하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던 나만의 스트레스 방법입니다.
단순노동인 대청소를 한두 시간 하고 난 후 깨끗해져 있는 집안을 둘러보면 내 마음부터 상쾌해집니다.
반대로 머릿속이 복잡하고 감정이 예민할 때 어질러져 있는 집안을 보면 언짢은 기분이 먼저 듭니다.
청소와 더불어 가족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것도 마음이 심란해서 아무것도 집중하기 싫을 때 하는 단순 노동 중 하나입니다. 솔직히 음식은 마음이 편해야지 더 잘 만들어지고 맛있게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흙을 보며 살고 있다 보니 텃밭에 관심이 살짝 생겼습니다.
집앞뜰에 아주 간단하게 키워서 먹을 수 있는 마늘과 양파를 심어보았습니다.
'우리말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란 말이 있는데, 텃밭에 내가 심은 마늘 양파가 쑥쑥 자라 올라오는 것을 보며, 내 아이들과의 문제는 우리 집안 유전자와 내 양육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란 것인데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이렇게 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며 아이들에게 조금 더 느긋하게 다가가기를 노력하다 보니 변화되는 아이들의 행동도 보입니다. 아들이 다시 피아노 앞에 앉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의 감정 조절을 위해 듣고 있는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싶어서 연습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게잡이도 작년에 이 지역으로 이사 와서 아이들과 함께 여러 번 다녔던 활동인데 다시 한번 아들에게 같이 가자고 말을 건네니 흔퀘히 따라나섰습니다. 요즘 아들은 뜬금없이 1년 전 2년 전의 이야기들을 어렴풋이 기억해서 물어봅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과 행동으로 충격과 아픔을 주었던 그 예전과는 다르게 긍정적 기억을 어렴풋하게 떠오르며 말을 건넵니다. 다시 오래전 호기심 많고 여행을 많이 데리고 다녀주어서 고맙다고 이 엄마에게 편지를 썼던 다정한 아들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듯합니다.
아들의 이런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2년 동안 무의식상태로 있다가 깨어난 아이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자신의 지나온 과거의 2년을 정확히 기억을 못 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실감을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사춘기는 질풍노도의 시기이고 아이의 뇌가 변하는 시기라고 흔히들 말하던데, 이제야 아들이 뇌가 깨어나서 조금은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듯하여 아들의 뜬금없는 과거의 질문에도 반갑기만 합니다.
되돌아보니 지금 이렇게 아이들과 힘들게 보내고 있는 우리 가족 간에 불화의 원인이 되는 아이 행동의 문제는 아이들이 어렸던 10살쯤 되었을 때부터 보이긴 했었습니다. 그 당시는 아이들도 어렸었고 그랬기에 행동의 문제도 아이들의 다른 생활에 비했을 때 아주 미비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씨가 사춘기가 되어 갑자기 커지면서 우리 가정의 불화의 화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훈육을 하기에는 너무나 커버려서 부모말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아이들과 지난 2년의 시간을 어렵게 보내야 했습니다.
다시 아이들이 어렸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아이의 문제 행동이 보였을 때 아이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직장을 다녀야 했던 엄마로서 간단히 아이를 나무라거나 단호한 언어로 그 문제를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이 잘못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미리 정해둔 스케줄에 따라 지치게 다니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아이를 위한 스케줄,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 아이를 위한 모임들. 모든 것들을 아이들을 기준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랬기에 훗날이 되면 이 엄마에게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아주 크게 부족했던 것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정서적으로 소통하며 서로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바깥에 나가서 엄마가 정해주는 예체능 프로그램과 친구들과 함께 하는 체험활동 그리고 모임들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이 엄마와 우리 가정 안에서 즐겁게 놀이하는 정서적 공감 시간을 가져본 적이 적었습니다.
주말을 다양한 활동으로 아이들과 보낸 것은 후회가 없는 일이지만, 서로 편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책도 읽고 보드게임도 하면서 집안에서 조용히 일상을 보내는 시간도 함께 가졌어야 했었습니다. 그랬더라면 아이들이 문제가 되는 행동이 어떤 건지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고 또 전문가와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고려해 보았을 것입니다.
인터넷이란 세상에 빠져버리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우울감에 빠져사는 아이들로부터 커다란 바위로 맞은듯한 충격을 받으며 과거 1년을 살아왔었습니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충격이 컸던 어느 날은 아침에 눈을 떠서 다시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부질 하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새로운 출발을 계획하며 우리 가족에게 알맞은 지역으로 이사를 하였고 그렇게 이곳에서 살아온 또 다른 지난 1년은 그 지난 과거의 1년보다는 훨씬 우리 가족의 안정을 되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캠핑을 다니면서 점점 서로 간의 거리감을 좁혀가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힘듦을 겪을 때 전문가로부터 들었던 말은 엄마가 평온하고 엄마가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날씨가 더 따듯하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야외활동을 더 많이 다닐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한 후부터 내 삶의 패턴을 찾았고 여유도 찾았습니다.
동네 가까운 곳의 산책을 통해서 자연이 주는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감탄하며 나 스스로의 마음과 감정을 조절합니다. 또한 온라인 영상의 전문가들의 조언을 찾아 듣고 가족관계 특히나 자녀와의 갈등을 겪고 있는 고민이 담긴 영상들을 보면서 나의 부모로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나의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부터 말고 행동을 변화시키고 조금 더 성숙한 어른으로서 엄마로서 아이옆에서 기다려 주니 아이는 아주 조금씩 변화되고 있습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감정 폭발의 폭이 줄어들었고 그 간격이 길어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오래전 아이들이 힘들게 하였을 때 아이를 모질게 대한 것에 대한 부모로서의 죄책감과 후회를 남겼던 글을 보면서 다시 한번 반성합니다.
사랑을 주기 위해 태어나게 한 아이에게 부모로서의 사랑과 공감 그리고 격려보다는 그 외의 것들을 더 많이 주며 양육해 온 것부터 인정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나 역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내가 낳은 내 자식에게 조차도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가끔은 비참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다른 어떤 것들보다는 부모로서의 사랑을 먼저 주고 아이가 자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꾸준하게 노력하려고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그날이 오면 그때쯤이면 이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주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