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을 위한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떠났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로!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상상한 적이 없었다.
항상 아이들 눈높이에서 아이들 흥미 위주로 생활을 같이 해왔었기에
나와 아이들과의 관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라 생각해 왔었다.
아이들로부터 부모로서의 역할을 거부당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너무도 가까이 있어서였을까?
내가 먼저 미리 해주려고 해서였을까?
내게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데,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이미 많이 컸다고 생각한 아이들은
항상 가까운 곳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엄마를 강한 방식으로 거부하기 시작하였다.
말투가 달라졌고 행동도 달라졌고 그리고 자신들의 방 안에서만 있고 싶어 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 장을 보러 다니던 것들도 이젠 혼자만의 몫이 되었고,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해왔던 나들이도 더 이상 계획하는 즐거움을 가질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집안에 머무르는 것을 더 선호하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온라인 세상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와의 마찰도 잦아졌고
아이들은 이런 나를 향해 온라인에서 배운 것 같은 비난의 말들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이 공허함을 나 역시 온라인세상에서 채우려고 하였다.
자식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허무한 삶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영상들을 찾아보는 것을 시작으로
임종을 맞이할 때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고독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노후에 아이들이 곁에 없어서 쓸쓸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
그리고 아이들 없이 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
이후 내 묘지에 아이들이 찾아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슬픔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미친 듯이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펑펑 울기를 반복하였다.
아이들에 대한 미움이 반 그리고 허망한 내 인생에 대한 후회가 반
나 자신을 이런 생각들로부터 스스로 괴롭히고 지내기를 한동안 하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의 반백년의 인생과는 반대로
남은 반백년은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인생계획을 하고 살아보자는 생각이 문득 나를 깨우쳤다.
아이들이 목표로 하는 대학이 있는 곳으로 이주할 계획을 가지고
대학을 다닐 동안 아이들이 나와 함께 살아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지만,
이제는 나의 노후를 위해 살기 좋은 곳으로 이주할 곳을 찾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을 잘 뒷바라지해서 키워두면
나도 함께 잘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깨어나서
아이들이 나를 돌보지 않을 경우
나 혼자 남은 노후를 어떻게 잘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나둘씩 나 자신만을 위한 인생계획을 찾아가다 보니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댔던 것처럼 힘들고 무거웠던 나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 시작하였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서 나의 노후를 조금 더 일찍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에 기뻐하였다.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아이들로 향하는 내 에너지는
아이들의 순간적 반응으로 그때그때 브레이크가 걸렸고
어느덧 나의 사고는 온전히 나를 위한 조금은 이기적으로 바꾸어지기 시작하였다.
다행히도 이런 나의 변화에 대해 아이들은 섭섭함을 가지지 않아서 부담이 없었다.
너무도 당연했지만 말이다.
이주해서 살 곳의 새 집을 알아보고 이사 가는 계획을 세우고 이사를 하는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오로지 그 생각에 몰두하느라 나의 서러움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나의 자유시간을 아이들이 아닌 나와 취미를 같이하는 사람들과 보내기 시작하였다.
나보다 더 삶의 경험이 많은 그 사람들은
그들의 자녀들과 관계가 좋던 나쁘으든지 간에 모두들 노년이 되어 혼자 살고 있었고
그들만의 생활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자녀들을 다 성장시켜 독립시킨 후 혼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나를 위해 선택한 도시에서 내가 만족하는 생활환경에서
나 자신을 위한 여가시간을 마음 편하게 가지다 보니,
조금 더 성숙한 어른으로서 엄마로서의 내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심리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나 또한 나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나 자신의 살아왔던
묻어두고 싶었던 과거를 꺼내 들여다보면서
나 자신의 당시의 힘들었던 마음을 스스로 토닥여 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 격려도 해주었다.
나의 과거의 상처로 인해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이 되어 내가 아이들에게 준 심리적 상처
그리고 당시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당시 어렸던 아이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다시 내 심장을 저려오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조금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내 아이들을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며 살며시 등을 토닥여 주자고 다짐하였다.
엄마도 인간이기에 아직도 가끔은 내 아이들이 던져대는 말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아프다.
그렇지만, 이제 아이들이나 나나
서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 관계가 유지가 되는지를 알기 시작하였고
힘들었던 지난 일 년보다는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에 더 우리의 앞날에 대한 희망이 보인다.
가족으로서 가장 힘든 시기를 서로 보듬어 줄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웃으며 서로 대화하는 날이 올 것이 란 것을 알고 있다.
얼마나 좋은가, 이 시간
나 혼자만의 자유여행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즐기자!
샌프란시스코 여행 브이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