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 커피

3. 10. 2025

by Helen J

3. 10. 2025.(Mon), 9am


요즘 알고리즘이 자꾸 나에게 방탄 커피를 추천한다. 버터, MCT오일, 코코넛 버터 같은 고 지방을 커피와 함께 마시면 총알도 막아낼 만큼의 에너지를 준다는 방탄 커피. 알고리즘이 보기에 내가 더 힘을 내야 한다는 걸까, 아니면 앞으로 닥칠 총알 같은 일 더미를 예고하는 걸까. 속는 셈 치고 쿠팡 새벽 배송으로 버터를 주문해 놨다.


아침에 나올 때 버터를 챙기는 것도 귀찮았으니, 알고리즘이 옳았다. 내가 나를 챙길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요놈의 버터를 후다닥 몇 조각을 잘라 봉지에 넣고 출근하자마자 휘리릭 커피에 타서 한 모금 마셨다. 뭐, 맛은 나쁘지 않다.


사실 나에게 총알처럼 느껴지는 건 하루, 24시간, 1,440분, 86,400초다. 하루는 꽤 긴 것 같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것 같아서 이것저것 우겨 넣기 일쑤다. 하지만 늘 하루의 끝에서, 이미 도착 선에 명중한 총알 같은 시간들 앞에 항복 선언을 한다.


오늘의 할 일: 이메일 확인, 자료 정리(그냥 정리가 아니라 정말 자알 정리하기), 은행 가기 등 자잘한 일들을 끝내고 마음속에서 지우기. 무엇보다 자잘한 일들을 먼저 하다가 자료 정리를 미루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기.


지금 이 글도 할 일 하나를 마무리하는 과정이다. 오늘부터는 그때그때 드는 생각들을 작게나마 적어보기로 했다. 총알처럼 지나가는 시간들 앞에서 무력한 관찰자가 되는 대신, 내가 본 것들에 작은 깃발이라도 남기기 위해.


적당히 식은 방탄 커피를 마시며, 오늘 하루의 할 일 하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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