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가방을 메고 있어, 무겁게
아침 일찍부터 일도 있었고 해서 최대한 가벼운 주제를 글로 쓰고 일정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가벼운 주제는 무엇인가? 손쉽게 쓱 쓸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는 가볍지 않은 인간인가 하는 심오한 생각 속에 한 줄도 써내려 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태도는 내 오늘 계획에도 묻어나 있다. 오늘 아침에 꽤 주요일정인 하나를 끝냈고, 오늘 밤까지 꼭 마쳐야 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사실 지금 나는 가벼운 마음을 가져도 된다. 언니가 추천해준 오피스 옆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와도 되고, 아직 못 본 미키17을 슬쩍 보고 와도 뭐라 할 사람도 없다.
그런데 내 맘은 왠지 그렇게 가볍지가 않다. 어서 오늘을 더 효율적으로 보내야 할 것만 같다. 자판기 앞에서 굳이 마실 필요 없는 음료를 골라 드는 사람처럼,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운동할 때 왜 어깨가 그리 뻐근한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나에게 일정이 없어도 상당한 무게감을 지운다. 막상 열어보면 텅 빈 가방이라도 짊어지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처럼.
휴우. 심호흡을 하고 오늘을 시작한다. 이미 오늘의 주요일과는 마쳤고, 오늘 큰 성과를 내지 않아도 된다. 차분히 오늘이라는 가방 안에 들어가는 만큼 넣고, 짊어지고 싶은 만큼 보관하겠다. 그리고 혹여 가방 없이 그냥 훌훌 자유롭고 싶다면, 오늘은 그런 마음도 허용하겠다. 어깨를 쭉 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