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한 인간

무색무취가 아닌 컬러풀한

by Helen J

어제 먹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는지 오후부터 체기가 있다. 집에 오는 길에는 답답하고 어지러웠다. 치아시드와 오트밀이 들어간 음식을 어제 좀 욕심부리며 먹었더니, 그게 탈이 난 모양이다. 내겐 이 불편함이 그다지 새로운 느낌은 아니다. 억지스러운 느낌을 감수하고 먹는 게 아니라면, 입맛에 비해 많이 먹지 못하는 나는 평생 위장이 소식인이다.


요즘 먹방러들을 보면 피자 한 판도, 거기에 도넛 한 판도 거뜬히 먹던데! 내 위장은 반성해야 한다. 왜 같은 위장인데 그들의 위장만큼 열일하지 못하는가! 왜 이렇게 빨리 파업 선언을 하는가!


왜 내가 소화할 수 있는 1인분은, 이 맛난 것 천지인 요즘 세태에 따라가지 못하고 이렇게 제한적인 걸까. 마치 하루에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음식이라는 자극에 허용치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어느 정도 지나면 입맛에 바리케이드가 단단히 쳐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더 아쉬운 점은 꼭 먹을 것뿐만 아니라 다른 외부 자극에도 나에게 하루 최대 허용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는 것이다. 가장 취약한 자극은 사람 사이에서 오는 자극이다. 언쟁이 붙거나, 너와 나의 생각 차이를 굳이 느끼게 되는 상황을 피하려 한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나는 다른 이에게 무색무취, 무취향의 사람처럼 나를 보여준다. 무난한 인간. 그게 멀리서 보는 나다.


이것은 하루 최대 갈등 허용치가 낮은 나에게 꽤 안전한 방어기제다. 특히나 잔소리꾼 윗분들 앞에서는 강추하는 처세법이다. 이 방어기제를 장착하고 만난 사람들은 내가 무난하다고 편안해한다. 굳이 묻지 않고도 내가 자신들과 같은 생각일 거라 믿는다. 주변 사람 색에 그럭저럭 맞춰 존재하는 것은 쓸데없는 에너지를 아끼는 꽤 유용한 방법이다.


그러나 사실 무난한 사람이란 가장 까다로운 사람이다. 마치 자신에 주변의 색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하고 자신의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상대가 불편해할 갈등을 미리 감지하고, 그 부분에서는 자신의 색을 드러내지 않는 민첩함과 예민함.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둥글둥글해 보일 때, 그 사람의 그 모습의 그림자인, 그 반대급부인 예민함과 배려에 눈길이 간다.


하찮은 위장으로 프로 먹방러를 꿈꾸듯, 무난한 인간이라 타칭되는 나도 다채로운 나를 꿈꾼다. 가끔은 내 주장도 더 하고, 내 색을 더 상대방에게 보여주고 싶다. 치열히 나를 보여주고, 치열하게 당신을 알고싶다. 그것이 잔잔한 관계에 파도를 일으키더라도. 자유롭게 그 진동하는 갈등 속에서 다양한 색으로 유영하는 법을 배워, 무엇이든 다 소화해내고, 무엇이든 정말 무난히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그런 게 진짜 무난한 인간 아닐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볍지 않은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