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 노란색같은 빛과 극명한 그림자의
"아직 한겨울인데 웬 썸머타임?"
썸머타임으로 바뀌는 3월의 주말, 이렇게 투덜거리고 나면 일러진 해 뜨는 시간을 체감하곤 했었다. 3월이면 보스턴은 아직 한겨울인데. 연말·연초 행사로 반짝반짝한 12월, 1월보다 마음은 봄인데 겨울이 늘어지는 3, 4월은 더 깊은 한겨울처럼 마음이 시렸다.
2025년에도 어김없이 지난 주말부터 썸머타임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미국 시간으로 하는 미팅들은 한 시간씩 빨라져, 나름 조금 일찍 자고 조금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이 스케줄에 가깝게 일정이 조정됐다. 미국에 있을 때는 썸머타임이 시작되면 잠잘 한 시간을 뺏긴 것 같아 아쉬웠는데, 한국 온 이후부터는 한시간 일러지는 취침 시간이 너무 반갑다. 물론 한 시간 일찍 일정이 시작되는 날도 있지만...
왠지 햇살이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미국의 Summer time. 미국의 진짜 여름시기를 처음 보내게 된건 7월의 서부에서였다. 여름학기 교환학생으로 처음 맛본 버클리의 노랗다 못해 형광 노랑 같은 햇살은 아직도 진하게 마음에 남아 있다. 한국 여름볕에는 괜찮았던 머릿결이 햇살에 바랜 것처럼 바스락거렸던 걸 보면, 마치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 같은 강한 볕의 인상은 단순한 내 개인적 감상만은 아닐 것이다.
다시 동부로 돌아와 3월에 아직 한겨울인 보스턴인 날씨 속 Summer time의 시작이라는 아이러니. 이번 한 주는 그 어색함을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는 시간이었다. '자국 우선주의, 미국은 다시 위대해질 수 있다!!' 라는 뭔가 대단히 휘황찬란한 구호 속에 지금 상담의 현장에서 느껴지는 미국의 계절은 확실히 서부에서 만났던 진정 여름날의 찬란함과는 거리가 있다.
예년 같았으면 OPT 기간에 여러 인턴 제안을 받았을 내담자들이 모두 본국으로 돌아갔거나, 인터뷰 제안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인종 다양성을 위해 Caucasian이 아닌 것이 득이 되면 됐지, 절대 실이 될 수 없는 분야의 교수 리스트에서도 인종 차별을 우려할 만한 데이터가 쌓이는 것에 점잖은 척 아무도 입을 떼지 않는다. 표현조차 웃기지만, 진정한 미국 혈통이라고 자부하는 계층에서도 불안은 실재한다. 많은 일자리가 없어지고 통폐합되고, 다달이 새로운 해직자가 나온다. 차별의 대상이 된 '그들의 규정에 의해 미국이 아닌' 계급이 명확해 진 만큼 더 더, 배척되는 그들과 다름을, 진짜 미국인임을 증명해야 할 과제를 안고 차별의 반대집단으로 더 몸을 옮긴다.
이 불안의 시기를 함께 지나며 나의 상담자로서의 자세를 생각한다. 이들이 자신의 무능 때문이라고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는 것, 혹은 그저 자신의 근거 없는 걱정일 거라며 조증 모드로 있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버클리에서 경험한 진한 형광 노랑 같은 햇살, 강한 햇살에 사과 하나도 모형처럼 깎아 놓은 듯한 새빨갛고 예쁜 색은 나에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미지의 느낌으로 남아 있었다. 하루 종일 햇살을 맡으며 걷고만 싶던 그 거리들엔 코너 하나만 돌면 위험한 곳들이 산재했다. 밖에서 자도 얼어 죽지 않을 따뜻한 날씨 덕인지, 쉽게 구할 수 있던 마약 덕인지 길거리를 집 삼아 사는 히피들이 널려 있는 거리. 정말 코너 하나를 돌면 걷고 싶던 거리에서 총알이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거리로 변하는 이상한 도시. 버클리의 강한 햇살은 그만큼이나 극명한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새 리더가 내뿜는 그 화려해 보이는 구호. 그 모든 것은 강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코너 하나만 돌면 삶의 근간을 잃을 것 같은 불안을 모두에게 일으키고 있다. 그의 첫 임기보다 더 체감되는 삶의 현장에서의 어둠의 크기에 나는 우려한다. 그래서 나는 이 시기, 그의 모든 행보가 겨울 속 아직 오지 않은 여름의 시간 선언처럼 더 생경하게 느껴진다. 정말 그의 외침처럼 미국은 다시 한번 찬란한 여름의 시기로 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