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의 위트와 신경질
어린 시절 우리 집 화장실 입구에는 커다란 책꽂이가 있었다. 내 기억에 그 책꽂이는 나와 열 살 차이나는 큰오빠가 나무와 공구를 사 와서 직접 만든 것이었다.
그 책꽂이는 내게 보물상자 같았다. 화장실에 들락거릴 때마다 책장 앞에 먼저 서서 어떤 책을 가져갈까 잠시 고민을 했고, 한 권을 뽑아 들고 변기에 앉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어떤 날은 몇 쪽만 훑어보고 다시 제자리에 반납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화장실을 나온 뒤에도 계속 들고 다니며 끝까지 읽었다.
가장 좋아했던 것은 언니 2호가 구독하던 월간지 〈Cook〉이었다. 특히 그 잡지의 마지막에 실려 있는 심리테스트는 화장실에 앉아 있는 동안 간단히 퀴즈에 체크하고 결과를 읽으면 딱 시간이 맞아서 자주 애용하곤 했다. 심리테스트 후에도 시간이 조금 남으면 잡지에 실린 여러 나라의 음식과 식재료를 구경하곤 했는데, 짧은 시간에 세계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책꽂이는 공용이었기 때문에 언니의 잡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한 켠을 크게 차지하고 있던 건 제작자인 큰오빠의 책들이었다. 공대생이었던 오빠는 의외로 소설과 역사책을 즐겨 읽었다. 나름 멋졌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머리 빠지고 배가 나오는 것을 고민하는 중년 남자가 되어 있다. 어쨌든 오빠 덕분에 나는 夏目漱石(나쓰메 소세키)의 《坊っちゃん(도련님)》과 司馬遼太郎(시바 료타로)의 장편 역사소설 《竜馬が行く(료마가 간다)》를 만날 수 있었다.
오빠의 책을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 오빠가 직접 만년필 글씨로 쓴 짧은 독후감이 나오곤 했다. 《坊っちゃん(도련님)》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참으로 통쾌하다 어쩌구 저쩌구...'라고 일본어로 쓰여 있던 기억이 난다. 그 만년필 글씨의 잉크색이 파란색이던 기억도 생생하다.
한참 뒤에 읽었던 나쓰메 소세키의 《吾輩は猫である(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참 좋아하는 소설이다. 모든 작품이 다 그렇겠지만 나쓰메 소세키 소설 중 특히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작품들은 원어로 읽어야 제맛이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생각했다. 일본어를 할 줄 알아서 참 다행이라고. 그렇지 않았다면 위트 넘치는 행간에 슬쩍슬쩍 보이는 작가의 초예민 신경질적 성격을 어떻게 느낄 수 있었겠는가.
어쨌든 오늘은 오랜만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펼쳐 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우리 집 고양이들도 그 책의 주인공 고양이처럼 나를 관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