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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 중에 마주한 ‘진짜 이야기’

코칭주제를 바꿀 것이냐, 말 것이냐

by Helen


| 겉으로 말한 이야기와 마음속에 머물던 이야기


얼마 전 코칭에서 팀장 A를 만났다. 처음에는 “업무 우선순위를 잘 못 정해서 일이 밀린다”는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세션이 중반을 넘어가자 그녀의 말은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A는 팀원 B와의 관계가 자신을 감정적으로 얼마나 소진시키는지 털어놓았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B, 눈빛만으로도 “또 시작이네”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 우선순위 문제라고 가져온 주제 뒤에는 인간 관계의 무게가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조심스레 말했다. “원래 우선순위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이걸 계속해도 될까요?” 그 말속에는 이미 ‘진짜 이야기’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 주제가 바뀌면 코칭은 방향을 잃는 것일까?


코칭 중 주제가 바뀌면 초보 코치들은 종종 불안해한다. 혹시 내가 잘못해서 고객이 집중을 못하고 있는 걸까 하고.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런 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고객이 마음 깊은 곳의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때 코치가 해야 할 일은 방향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함께 확인해 주는 일이다. “지금 B와의 관계를 이야기하실 때 감정의 무게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어요. 오늘 가장 다루고 싶은 건 무엇일까요?” 이렇게 조용히 되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재합의는 주제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고객이 자기 삶의 중요한 지점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세션의 문이 자연스레 다른 쪽으로 열리는 순간, 코칭은 오히려 더 힘차게 흐르기 시작한다.


| 주제가 바뀌어도 대화는 제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시간이 정해진 코칭에서는 “지금 이 타이밍에 주제를 바꾸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라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코칭에서는 흐름이 제로 베이스로 돌아가는 일은 거의 없다. 고객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서로 부딪히며 움직이고 있고, 우리는 그중 일부를 이제야 마주할 뿐이다.

지금까지의 대화, 표정의 변화, 단어 선택, 머뭇거림과 한숨까지도 모두 새로운 통찰의 자원이 된다. 주제를 바꾸는 것은 대화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하는 일에 가깝다.

코치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불안을 내려놓고, “지금까지의 흐름은 어디로 이어지려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방향을 살펴보면 된다. 그러면 세션은 전혀 낯설지 않은 속도로 새로운 길로 이어진다.


| 코칭은 언제나 ‘고객의 내면이 열리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주제가 바뀌는 순간은 실패가 아니라 변화의 징후다. 고객이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흔들림이며, 그 지점은 늘 이전 이야기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코칭은 그 끌림을 따라가며 본질을 만나게 한다.

중요한 것은 코치가 무엇을 준비해 왔는지가 아니라, 고객이 지금 어떤 이야기에 마음을 내어주고 있는지다. 어떤 말은 겉에 머물고, 어떤 말은 중심을 건드린다. 그리고 코칭은 그 중심에 닿으려 할 때 비로소 생동감을 갖는다.

주제가 바뀌어도 괜찮다. 코칭은 계획의 학문이 아니라 발견의 과정이다. 고객의 내면이 열리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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