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프리랜서의 글쓰기 고집

알고리즘에 숟가락을 얹지 않는 사치

by Helen

[매거진 : 가난한 프리랜서의 소심한 사치생활]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 딱이네!

재미 삼아 사주를 볼 때 늘 듣는 소리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HRD(인적자원개발)를 하게 된 건 운명이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대학 시절, 학과 사무실에서 한번 가보라고 해서 연수원이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면접을 보러 갔고, 별 노력도 안 했는데 덜컥 합격했다. 그곳에서 20년이나 일했으니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아무 준비도 사전 지식도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곧잘 했고 성과도 냈다. 가끔은 보람도 느꼈다. 그런데 그 일이 나의 천직이라고 느낀 적은 거의 없다.


퇴사를 앞두었을 때는 다른 길을 꿈꿔보기도 했다. 하지만 한 우물만 너무 깊게 판 탓일까. 다른 일을 도모하기엔 그나마 타고났던 손재주는 무뎌졌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용기라고는 손톱밀큼도 없었다. 결국 익숙한 궤도 위를 계속 달리기로 하며 HRD 프리랜서 명함을 팠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 명확히 깨달은 사실 하나는 500명 넘는 신입사원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그들을 쥐락펴락하던 모습과는 안어울리게, 사실 나는 지독한 은둔형 집순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 홀로 앉아 키보드를 투닥거리는 지금,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하다. 사주는 자꾸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라고 등 떠밀지만, 정작 사람 속에 있으면 기가 빨려 너덜너덜해지곤 한다. 돌이켜보면 20년 직장 생활은 내 안의 깨알만 한 외향성을 마른걸레 쥐어짜듯 착취하며 버텨온 세월이었던 셈이다.


물론 나도 인간이고 사회적 동물인지라 가끔은 오프라인의 온기가 그리울 때도 있다. 사람들을 만나 밥도 먹고 수다도 떨어야지, 안 그러면 무자극 상태에 빠져 머리 속이 텅 빌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팬데믹 시절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하지만 약속이 잡힌 순간부터 당일까지 이어지는 은근한 긴장감은 어쩔 수가 없다. 날씨는 어떨까,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할까, 뭘 타고 갈까, 어떤 분위기로 대화를 해야 할까... 걱정 혹은 결정해야 할 선택지들이 쓰나미로 밀려온다. 하물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떻게 하면 이 약속을 취소할 수 있을까' 핑계를 찾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성적인 성격에 주변머리까지 없으니, 나의 비즈니스 스타일은 가만히 앉아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한량 스타일이다. 당연히 통장 잔고에는 자주 경고등이 켜진다. 일감이 줄어드는 요즘,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하고 하는 일이 글쓰기인데, 다행히 작년에는 책을 출간했고 요즘은 가끔 HRD 관련 월간지에 칼럼을 쓰고 원고료를 받는다. 하지만 고정된 일이 아니고 수입은 쥐꼬리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다.


요즘은 블로그, 브런치, 페이스북, 스레드, 인스타그램을 기웃거리며 세상 소식도 접하고 글쓰기 연습도 한다. 하지만 어느 하나 ‘열심히’ 한다고 말하기엔 민망하다. 열심히 하다가 그것이 또 하나의 ‘일’이 되어 지금의 행복을 앗아갈까 겁이 나기도 한다. 그저 꾸준히 쓰다 보면 내 마음에 드는 글이 써질 날이 오겠고, 나도 모르게 속도도 빨라질 것이고, 운이 좋으면 더 많은 독자들과 의미 있는 소통을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취미생활 하듯 글을 쓴다.


얼마 전, 2026년 한 해의 슬로건을 정하기 위해 코칭을 받았다. 코칭받기 전 혼자서 대충 생각한 슬로건 후보는 '정체성 찾기'였는데, 하던 일은 줄고 글 쓰는 시간이 늘어가니, 누군가 직업을 물을 때 선뜻 대답하기 어려워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위기감을 느낀 탓이다. 만약 글쓰기로 수익을 내면 나를 작가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사주가 가리키는 방향과 정반대로, 이제는 나의 의지로 직업을 선택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엉킨 실타래를 머리에 쑤셔 넣은 채 자격증 취득을 준비 중인 코치를 전화로 만났다.(역시나 온라인)


슬로건을 정하는 것이 코칭주제였기 때문에 나의 일상이나 가치관 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듣던 코치는 답답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슬쩍 꺼내 놓기 시작했다. 본인은 돈을 주고 ‘네이버 블로그 검색어 노출 비법’을 배웠다고 한다. 요즘 유튜브 콘텐츠는 AI가 순식간에 만들어 주는데 그 쉬운 걸 왜 안하느냐고도 한다.


조언하지 않는 것이 코칭의 원칙인지라, 그녀가 자기 얘기를 꺼내는 순간 '코치님, 이러지 마세요! 자격증 준비 중이시라면서요!' 하는 소리가 목구멍으로 올라왔지만 마른 침과 함께 꼴깍 삼켰다. 가끔은 코칭연습에 지쳐서 코칭을 빙자한 수다를 떨고 싶어 하는 코치도 있고, 코칭하다가 수다로 빠지는 것이 또 무료코칭의 묘미이기도 하니까.


그녀는 이른바 파워 블로거인 듯했다. 그녀를 포함해서 내가 만난 '블로그 운영 잘하는’ 사람들은 묘하게도 나 같은 초보에게 자꾸 뭔가를 가르쳐 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들의 특징이 있는데 '블로그'라는 단어가 상대방 입에서 나오면 순간적으로 대화하는 목소리의 에너지 레벨이 치솟는다. 마치 기적을 경험한 신도가 산 위에 올라가 소리치며 간증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말이다. 조회수를 올리고 이웃을 늘려 광고 수익을 얻는 비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AI로 콘텐츠 손쉽게 만드는 쉬운 길이 있는 것을 나라고 모를까?


문득 페이스북 친구 한분이 떠오른다. 그분은 전문 강사다. 전국을 누비며 다양한 강의를 하면서 강의 중 만났던 수강생들과 교육담당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타임라인에 쓰신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평소와 달리 자신의 유튜브에 대한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다. 그분 말씀으로는 자신의 유튜브에 '임영웅' 이야기를 올렸더니 '조회수'와 '좋아요'가 폭발했다는 것이다. 그분도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는지 글에서 엄청난 흥분이 느껴졌다. 글을 읽는 동안 '드디어 방법을 알았어!'라며 깔깔 웃고 있는 그분의 얼굴이 상상이 될 정도였다.


요즘 온라인 세상은 '숟가락 얹기'의 각축장 같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핫한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조심스럽게 한마디 거들면..."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수만 개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그 거드는 한마디들이 모여 온 세상을 하나의 이슈로 덮어버리는 쏠림 현상을 볼 때면 숨이 막힌다. 아니 무섭다. 이슈가 이슈를 덮고, 알고리즘은 그 쏠림에 가속을 붙인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게 만드는 거대한 함정이다.


얼마 전 나도 살짝 비슷한 경험을 했다. 평소 내 브런치 글에는 like it이 많이 찍히지 않는데 그날 썼던 글에 갑자기 like it이 폭발했다. 더구나 구독자가 아니라 비구독자의 like it이 더 많아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추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음 홈페이지 같은 곳에 내 글이 노출된 것인가 싶어서 홈페이지를 둘러봤는데 아닌 것 같았다.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본 결과, 아무래도 제목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제목이 ‘성심당 줄 서기와 남편의 빵봉투’였으니 성심당을 검색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글이 노출된 것이 아닐까.


처음엔 내 필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나 싶어 입꼬리가 씰룩였다. 하지만 like it이 늘어날수록 기분이 묘하게 뒤틀렸다. 제목에 성심당이 들어가 있었을 뿐, 고백하건대 그 글은 대충 썼던 글이었다. 며칠 밤낮을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하며 쓴 글보다, 성심당이라는 이름표를 단 글이 훨씬 대접받는 현실을 마주하고 보니, 열심히 일한 사람보다 아부 잘하는 동료가 먼저 승진하는 걸 지켜보는 듯한 허탈함이 느껴졌다.


찜찜했던 것은 또 있었다. 그 글의 제목에는 '성심당 줄 서기'라는 표현이 들어 있었지만 줄 서기 노하우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성심당을 검색하면서 빵 맛이나 줄 서기 노하우를 기대하고 들어온 이들에게는 흔히 '제목 장사'하는 글처럼 느꼈을 수도 있다. like it을 했다는 것은 읽고 나서 재미있었던 것이리라 해석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찝찝하다. 글을 읽었으되 like it을 누르지 않은 사람 중에는 '낚였다'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지 않겠는가. 지금도 나는 그 글을 다시 보지 않는다. 내가 쓴 글이지만 내 새끼 같지가 않다.


like it 수는 적더라도 얼마 전 썼던 ‘글씨 없는 타월’에 관한 글이 나에게는 더 소중하다. 변기에 앉아 누군지도 모르는 환갑 어르신의 이름을 무의식적으로 읽어 내려간 그 은밀한 기억, 아무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던 그 경험을 나의 대뇌피질 어딘가에서 핀셋으로 끄집어냈을 때의 쾌감을 잊을 수가 없다. 보고 또 봐도 예쁘기만 한 내 새끼는 그런 글이다. like it?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다. 이것이야 말로 가난한 프리랜서가 부릴 수 있는 우아한 고집이다. 검색어에 영혼을 내주는 대신 내 맘에 쏙 드는 ‘진짜 내 것’을 소유하는 사치를 부려 본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나의 글이 사랑받는 건 절름발이 기쁨일 뿐이니까.


비록 내 글이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지 못해 고요한 호수 아래 가라앉더라도 괜찮다. 내가 수십 번을 다시 읽어도 질리지 않는 그 문장 하나가, 어느 날 단 한 명의 진심 어린 공감과 맞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남들이 정해준 효율 대신, 나의 세계를 안전하게 지키는 고지식한 문장들을 고른다. 통장 잔고는 아슬아슬할지언정, 내 정서의 가장 깊숙한 곳을 탐험한 결과를 어렵게 한 문장 내놓는 기쁨이 더 귀하다. 그것이 프리랜서로서 내가 행사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고지식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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