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 봉투 앞에서 주판알을 튕기는 소심한 프리랜서의 고백
[매거진 : 가난한 프리랜서의 소심한 사치생활]
얼마를 넣어야 사람 노릇이 될까?
코칭 실습 중 만난 한 퇴직 임원의 고백이 생각난다. 평생 인맥을 자산 삼아 분주히 경조사를 챙겨 왔다는 그는, 퇴직 후 마주한 부고장과 청첩장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퇴직한 마당에 이 사람까지 챙겨야 할까?'라는 의문이 고개를 든 것이다.
직장생활을 오래 했고 임원까지 지냈으니 크게 사치 부리지 않고 소박하게 산다면 부부의 노후는 걱정 없을 터. 방심하던 참에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경조사 통지문은 그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든 듯 했다. 현직에 있을 때는 그 관계가 어떠하든, 일단 받은 부고장과 청첩장은 '무조건' 챙기던 그였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누군가의 슬픔과 기쁨에 지불하던 비용이 나의 노후 자금을 갉아먹는 ‘투자 대비 회수 불능’의 지출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부족한 코칭 실력 탓인지 그날의 코칭대화는 시원찮게 끝났지만, 남겨진 여운은 꽤 길었다. 남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백수나 다름없는 프리랜서로 사는 내게도, 지인의 경조사는 축하와 애도에 앞서 주판알부터 튕기게 만드는 불청객이다. 인맥이 자연스레 정리되어 연락이 예전만큼 잦지는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스럽다.
나에게는 지인의 경조사보다 명절과 어버이날 양가에 드리는 용돈 지출이 더 큰 부담이다. ‘적게 벌어 적게 먹고살자’를 모토로 삼고 비교적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지만, 월별 지출 현황을 보면 명절과 어버이날이 낀 달만 그래프가 산처럼 솟구친다. 그런 달은 어김없이 적자다. 그 구멍은 나머지 기간을 부지런히 살아내며 메워야 한다. 그래야 겨우 현상 유지가 된다.
문제는 물가상승률이다. 명절이나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ATM기 앞에서 짧고도 치열하게 고민한다. “물가도 올랐는데 이번엔 좀 더 넣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몇 년째 결론은 똑같다. '작년과 동일!' 아무리 물가가 올랐어도 내 수입은 해마다 줄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친정 언니와 오빠들이 명절에 엄마에게 얼마를 드리는지 잘 모른다. 그러다 우연히 큰언니의 봉투가 나보다 두툼하다는 걸 알게 된 적이 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저 정도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럴 때는 막내라는 특권을 누려도 된다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얍삽하다.
시댁은 좀 다르다. 결혼 초기에 딱 한번 시누이와 상의해서 부모님께 드릴 명절 용돈 금액을 맞춘 적이 있다. 하지만 10년도 더 지났고 나도 그 사이 살짝 올렸으니 시누이도 처음 합의한 그대로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시누이는 살갑고 다정한 딸이라 시어머님과 같이 장을 보러 가기도 하는데 가끔은 시누이가 결제를 하는 것 같다. ‘우리도 뭔가 더 해야 하나’ 싶다가도, 내 돈으로 남편 보약 해줄 때 시부모님은 외손주 보약 지어주시는 걸 보면서 ‘퉁 쳐도 됨!’ 하며 나만의 계산기를 들이댄다. 또 한 번 얍삽하다.
한때는 "가진 건 돈 밖에 없어"라며 당당히 말하고 다니다가 이제는 스스로를 "백수나 다름없는 프리랜서"라고 소개하는 현실 앞에서, 나는 그저 내 몫의 ‘표준화된 성의’를 봉투에 넣으며 적당히 미안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노릇을 유지한다.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가끔 걱정이 되지만 경조사비 때문에 적자 인생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간관계를 정리하라!'라는 썸네일을 본 적이 있는데, 다른 건 모르겠고 경조사비 측면에서는 매우 동의가 된다.
그런데 이런 나의 견고한 방어선이 무너지는 예외가 있다. 아끼는 선후배들의 경조사다.
17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부의금 명부를 정리하다가 한 선배가 낸 금액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직장 선후배들의 경우 경조사비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있어서 거의 대부분 비슷한 금액이다. 그런데 그 선배의 부의금은 그 두 배였다. 평소 윗사람에게 줄 서기보다 후배들을 잘 챙기기로 유명했던 선배였고 따르는 후배도 많았다. 나도 좋아하는 선배였는데 막상 거액의 부의금을 받고 보니 “내가 네 슬픔을 이만큼 크게 보고 있다”는 진심 어린 위로 같아서 가슴이 찡했다. 돈이 이토록 무섭고도 따뜻하다는 걸 깨달으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참 좋을 텐데 생각했다.
아마도 그 선배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구에게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닮고 싶었지만 나는 그 정도로 통 큰 사람은 못된다. 그래서 평생을 함께 할 것 같은 선후배 몇 명에게만 최선을 다한다. 생일은 못 챙겨 주더라도 힘든 일을 겪을 때는 내 기준을 뛰어넘는 마음을 전달하려 노력한다. 그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부의금도 조금 더 얹는다. 대략 남들의 2배 정도일 거라 예상하면서. (1.5배 일수도....)
가끔 소박한 이벤트도 한다. 방학 시즌 아이들 삼시세까 밥 차리기에 진이 빠진다고 하소연하는 후배에게 치킨 쿠폰을 보내며 “오늘은 밥 하지 마”라고 툭 던지기.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애쓰는 선배에게 먹고 힘내라며 소고기 보내주기. 아무 날도 아니지만 날씨가 좋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꽃다발 보내기 등등. 나답지 않은 행동이지만 스스로를 얍삽하다고 생각하는 쭈굴함을 희석시키는 데에는 효과가 있다.
돌려받을 것 생각하지 않고, 그저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 받는 상대가 좋아하는 표정이 보상인 그런 '사람노릇'은 내가 아무리 가난하게 사는 프리랜서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삶의 품격이라고 주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