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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Jul 23. 2019

[Design] HRD 담당자의 확신

이틀간 연속되는 강의를 할 때면 종종 "Reaction Memo"라는 것을 활용한다.


1일차 교육이 끝날 때쯤 수강생들에게 Reaction Memo 양식을 나누어 주고 각자 질문이나 고민을 적어서 제출하도록 한 다음 2일차 아침에 그 질문과 고민을 바탕으로 1시간가량 워크숍을 하는 방식이다.


며칠 전 강의도 이틀 연속되는 강의라서 Reaction Memo를 받았다. 강의 후 집에 돌아와 Memo에 적힌 내용을 하나하나 읽고 답을 준비하는 것은 종일 강의를 한 강사 입장에서는 약간 고된 일이지만 그 과정은 꽤나 즐겁다. 수강생들이 각자의 업무 현장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상세히 이해할 수 있고, 내가 강의했던 내용 중 수강생들을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했던 부분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단답식 문제처럼 바로 답이 가능한 질문도 있다.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논의를 하면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이슈 제기성 질문도 있다. 아주 가끔 HRD에 대한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약간은 철학적인 질문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 강의에서 그런 질문이 하나 나왔다.



"내가 설계한 교육과정이 잘 될 거라는 확신을

 어떻게 가질 수 있나요?"


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래서 꼼꼼히 문장을 해부하면서 답을 준비했다.


1. 교육과정이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설계(Design) 단계'에서 알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하다.


설계(Design) 단계는 과정개발 전체 프로세스(ADDIE)의 중간 정도에 있는 단계이다. 교육과정을 실시(Implementation)하기 직전까지를 실질적인 과정개발이라고 본다면 설계(Design)가 끝났다 해도 개발(Development) 단계가 아직 남아 있다. 어떤 일에 대한 성공에 대한 확신(혹은 실패에 대한 확신)은 실행 단계에 가까워질수록 분명해진다. 다시 말해 설계(Design) 단계에서는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단계이다. 개발(Development)을 마치고 바로 내일이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날이라 해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질문을 했던 수강생이 진짜로 알고 싶었던 것은 분석(Analysis) 단계에서 어떤 조사방법을 써야 설계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나.. 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분석 단계에서 사용하는 조사방법 이외에도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교육 기획 단계에서 교육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를 다루는 교육과정을 기획했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애초부터 교육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교육으로 해결하려고 했다면 어떤 방법을 써도 교육은 회사 돈을 줄줄 새게 하는 낭비가 되기 때문이다. 교육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를 적절히 개입시키고 활용하고 있는가도 교육의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서베이, 인터뷰, 문헌 분석을 아무리 정교하게 진행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분석해서 구체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할 때의 HRD 담당자의 통찰 또한 매우 중요한 영향 요인이다.


2. 그렇다면 교육과정이 '성공'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것이 궁금하다면 되묻고 싶다. 당신(당신 회사, 당신이 담당하는 교육과정)은 교육의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요즘은 단순히 수강생만을 만족시켰다고 해서 성공한 교육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업무수행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을 다루는 교육이라면 수강생이 힘들다고 아우성을 친다 해도 교육에서 확실히 가르쳐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나아가 기업교육은 교육과정을 통해 배운 내용을 자신의 업무에 적용하여 업무수행 방식을 혁신시키거나 사업적 성과를 도출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 교육의 성공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는 만큼 무엇보다도 교육의 성공에 대한 합의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우선이다.


교육 성공에 대해 정의했다면 이제 개별 교육과정을 평가(Evaluation)함으로써 성공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교육평가 모델이 Kirkpatrick의 4수준 평가이다. 그리고 4가지 수준의 교육펑가  중 HRD 실무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수강생들이 교육장을 떠난 이후에 실시되는 Level 3(Behavior) 평가와 Level 4(Result) 평가이다. Level 3, Level 4 평가를 하기 위한 방법론을 잘 몰라서 어려워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매일매일 운영 업무에 치이다 보면 이미 끝난 과정에 대한 부가 업무처럼 보이는 평가업무를 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쉽게도 Level 3, Level 4 평가는 대부분 Top Down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즉, HRD 담당자가 넋 놓고 눈 앞에 있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상사들의 지시로 떠밀려서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준비가 안된 HRD 담당자는 결국 당황하게 되고 헤맬 수밖에 없다. 백번 양보해서 HRD 담당자가 의미 있는 평가 결과를 내놓았다 하더라도 "정말 잘했다"는 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다. 왜냐 하면 자신이 한 일을 자신이 평가해서 보고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교육평가 업무를 외부 전문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3. 마지막으로 '확신'이라는 것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확신이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다. '나'라는 사람은 어떨 때 일을 잘했다고 느끼는가 혹은 동기부여가 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교육 후 수강생들로부터 받는 만족도 설문의 결과를 보고 성공을 확신한다. 다소 위험한 접근이지만 만족도 평가도 무시할 수 없는 교육성과 지표인 것은 사실이다. 또 어떤 사람은 윗사람이 칭찬해 주면 스스로 일을 잘했다고 느낀다. 인정의 욕구가 강한 경우에 해당된다. 반면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수강생들의 눈빛과 반응을 통해 성공을 확신하는 경우도 있고 남들이 보기에는 좋은 결과를 냈지만 스스로의 내적 기준이 너무 높아서 혼자 자책하며 불만족해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다.


지금까지 연달아 좋은 결과를 도출한 교육이라 해도 내일 만날 수강생들의 교육결과는 참담한 실패일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과거 경험과 흘러간 데이터를 활용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불확실성 속에 함몰되어 걱정만 하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 하에서 최선을 다 했다면 적절한 시점에서 마음의 근육을 팽팽히 당겨 성공에 대한 자기 확신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HRD 담당자에게서는 긍정의 에너지가 향기처럼 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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