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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06. 2024

언땅 위에서

 모든 것이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단내를 풍기는 엄마의 젖가슴 냄새와 나를 품어줄 때 온몸에 전해지던 온기는 기억을 되짚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강렬하게 남아있다.

  아직 어리고 허약한 엄마였지만 그녀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안락한 곳에 나를 누이고 젖을 물렸다. 아무리 허기가 져도 내가 깊은 잠에 들 때까지 곁을 떠나는 적이 없었다.  작고 여린 체구에도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앙칼지고 매서운 모습으로 돌변했다. 그렇게 나의 엄마는 나를 지켜냈다. 엄마의 사랑과 정성으로 나는 나날이 살이 오르고 몸집이 커졌다. 곧 더 이상 모유만으로는 배가 차지 않는 나를 위해 엄마는 얼마 되지 않는 자신 몫의 음식도 쪼개에 나누어주었는데 그럴 수 있는 날보다 함께 굶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낯선 사람이 근처에 다가오는 것조차 경계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던 엄마는 언젠가부터 나를 향해 음식을 내미는 사람들을 모른 척했다. 그들 중 한 젊은 여자는 매일같이 찾아와 나와 엄마의 끼니를 챙기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런 도움이 영 어색하고 민망했는지 늘 거리를 두고 멀찍이 지켜만 보다가 그 여자가 완전히 떠나고 난 후에야 음식에 입을 댔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그녀에게 완전히 마음을 여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정한 목소리에 늘 미소를 보이고 부드러운 손길에는 갖은 애교로 답했다. 그러다 지독한 겨울이 왔다. 밥을 두둑이 먹고 엄마의 품에 온몸을 완전히 파묻고도 오돌오돌 떨려서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추운 날들이 이어졌다. 감기에 걸렸는지 콧물이 나고 진득한 눈물이 자꾸만 차올라 눈꺼풀에 엉겼다. 엄마가 곁에서 수시로 내 코와 눈을 닦아주었지만 점점 숨을 쉬기가 힘이 들었고, 눈이 쉽게 떠지지 않았다.  며칠을 앓고 나서 엄마의 부축으로 겨우 몸을 일으켜 밖에 나갔다. 그나마 따뜻한 볕에 몸을 녹이며 앉았는데 늘 우리 모녀의 밥을 챙기던 여자가 오늘은 비슷한 또래의 남자와 함께 다가왔다. 한참을 걱정스럽게 나를 지켜보던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병원에 데려가봐야겠지?"

"그러게. 심상치가 않네. 저러다 죽을 수도 있겠어."


 두 사람은 멀찍이 떨어져 앉아 나를 지켜보던 엄마와 말없이 얼마간 눈을 맞추었다.  느리게 두 눈만 깜박이던 엄마가 마치 두 사람에게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의 뜻을 전하듯이 나를 두고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엄마를 쫓아갈 기력이 남아있지 않은 나는 죽을힘을 다해 울어댔지만 엄마는 듣지 못한다는 듯이 그저 앞만 보고 나아갔다. 보일 듯 말 듯 멀어진 엄마를 확인하고 젊은 여자는 미리 챙겨 온 담요를 내게 두르고는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남자가 서둘러 우리를 차에 태웠고 히터로 데워진 차 안이 너무 따뜻해서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난생처음 가본 병원이란 곳에서 이런저런 처치를 받는 중에 잠시 정신이 들기도 했지만 왕왕거리는 소리만 귓가에 울릴 뿐 흐릿한 눈에 제대로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의사가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한결 숨시기가 편안해졌고 나는 금세 또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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