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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13. 2024

새로운 가족이 되어줄께

  병원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 정말 많은 잠을 잤다. 처음 이틀은 밥을 먹기 위해 눈을 뜨고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고 힘이 들어 허기를 모른 채 했다. 땅이 꺼져 그 까마득한 속으로 한없이 빨려가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부터는 호흡이 안정되었고 식욕이 다시 돌았다. 스스로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 나를 병원에 데려왔던 여자를 다시 만났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그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내게 와 눈을 맞추었다. 내가 잠에 취해 있던 며칠 동안 잠시 깨어 눈을 꿈벅거리던 순간에도 나를 걱정스럽게 들여다보는 그녀의 눈동자를 몇 번인가 보았던 것도 같았다.


  "자, 우리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잘 먹고 잠만 잘자면 다 나을 거래."

  목소리에서 감격과 설렘이 묻어났다. 나는 그녀를 따라 얌전히 차에 올랐다. 무릎 위에 나를 소중히 앉히고 내내 나를 쓰다듬던 여자는 운전하는 남자의 눈치를 살피는 듯하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내가 엄마고 여기는 아빠!" 최대한 경쾌하게 남자를 소개하고는 운전대를 잡지 않은 그의 오른손을 끌어다가 내 머리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을 함께 포개어 깍지를 끼었다. 앞만 보고 운전에 집중했던 남자가 신호대기를 틈타 고개를 돌리고는 여자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엄마와 헤어지던 그날, 여자와 함께 나를 병원에 데려갔던 남자였다. 그는 낮은 한숨을 내뱉더니 내 머리 위에 놓였던 손을 끌어다 다시 운전대를 붙잡았다. 한참을 말없이 운전에만 집중했다. 곧 어느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웠고 크게 기지개를 켠 후 내쪽을 바라보았다.

 "얌전하네."

그 말에 신이 난 듯한 여자는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말을 이었다.

"정말 얌전하지? 우린 정말 운 좋은 부모가 된 거야."

병원에서 받은 진료수첩과 약을 챙긴다는 핑계로 여자는 마뜩잖아하는 남자에게 나를 받아 들게 했다. 곧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다 같이 10층에서 내려 그들이 집이라고 부르는 공간으로 들어왔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다시 나를 안아 올린 여자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보들보들한 담요가 깔린 곳에 나를 내려두었다. 부드러운 촉감에 퍼뜩 진짜 엄마생각이 떠올랐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엄마의 흔적을 쫓아보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공간을 살피는 나와 눈이 다시 마주친 여자는 한없이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나를보며 말했다.

 "내가 좋은 엄마가 되어줄께!"

 하지만 그녀는 나의 진짜 엄마와는 너무도 달랐다. 생김새는 물론이고 걷는 방식이나 내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마저도 어느 하나 비슷한 점이 없었다. 일순간 진짜 엄마는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라는 불안이 온몸을 휘감았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그대로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는 자신의 몸을 내 위로 동그랗게 말아 동글을 만들어주었다. 마치 동물이 새끼를 품듯이.  그리고는 다시 작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이젠 내가 네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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