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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0. 2024

소연과 우영

  생애에서 가장 안락한 며칠이 지났다. 매서운 겨울바람은 두터운 콘크리트 벽을 뚫지 못했고 뽀송한 담요가 깔린 바닥에서는 온종일 훈훈한 온기가 올라왔다. 늘 나를 불안하게 만들던 온갖 소음도 새 집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내게 자신이 새엄마라고 소개했던 여자와 함께 사는 남자의 목소리에도 슬슬 익숙해져 갔다. 이들과의 새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은 늘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로 여자가 내 식사를 챙겨주었는데 단순히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여태껏 맛보지 못한 다양한 음식과 간식으로 먹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다.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곁에 앉아 사랑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는 여자와 달리, 아주 가끔 여자의 부탁으로 남자가 내 식사를 챙길 때에는 여느 감정도 없다는듯한 목소리로 '먹어.'를 내뱉고 자리를 떴다. 아무래도 남자는 내가 이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잠투정을 하는 내가 늦은 밤에 울어대는 통에 남자가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이곳이 좋기도 했지만 새롭게 경험하는 고요와 평안이 때때로 낯설고 무서웠다. 그리고 엄마가 그리웠다. 그런 밤이면 쉽게 잠들지 못하고 엄마를 부르며 울었고, 여자는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나를 품고 함께 잠들었다. 여자의 온 신경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남자는 싫은 듯했다.


  어느 날, 여자의 친구들이 찾아왔다. 낮잠을 자고 있는데 소곤거리는 말소리에 눈을 떠보니 낯선 이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구석으로 가 몸을 숨겼다.


"우와! 정말 어리구나. 아무래도 우리가 무서운가 봐."


 여자는 친구들을 이끌고 거실로 나갔다.  그들의 말소리가 열린 문틈으로 들려왔다.

"소연아, 우영 씨가 진짜 동의를 했어?"

"정말 너희가 키울 거야?"

 

질문이 쏟아졌고 여자는 모두 맞다고 차분하게 대답해 주었다.

나는 여자와 남자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의 새엄마와 아빠, 소연과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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