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연은 늘 나와 눈을 맞춘다. 배가 고픈지, 졸리거나 지루한 건 아닌지 내 마음을 읽으려고 애썼고 신기하게도 대부분은 내가 필요한 것을 알아내었다. 요즘은 부쩍 '나도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소연에게 '엄마'라고 불러줄 수 있을 텐데... 그들의 말소리를 흉내 내어보지만 나의 소리는 아직 정확하게 가닿지 않는 모양이다.
봄이 되었다. 베란다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아침 볕이 충분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 계절의 이름이 봄이라는 것을 소연이 알려주었다.
"이제 봄이야. 너와 맞는 첫 봄이라서 엄마는 정말 설레어."
가늘고 기다란 검지로 내 콧등을 톡톡 두드리며 소연은 내게 말을 건다. 그럴 때면 나는 최대한 가만히 그녀의 눈을 응시하고 그 말들을 잘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마치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처럼 소연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나의 이름은 겨울이 되었다. 소연이 우영에게 겨울이라는 이름이 어떻겠느냐고 물었을 때 우영은 시큰둥했다. 내게 굳이 이름이 필요하겠냐는 듯이, "흠-" 하고 무성의한 콧소리로 반응할 뿐이었다.
우영은 처음부터 나를 반기지 않았다. 그들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눈빛과 표정, 몸짓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나는 우영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썼다. 밥투정도 하지 않았고, 처음 몇 주를 빼고는 잠투정도 하지 않았다. 그와 단둘이 집에 남게 되었을 때는 나의 존재 자체를 상기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초인종이 울렸다. 외출한 소연이 집에 돌아온 줄 알고 잠시 신이 났지만 그녀라면 초인종을 누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 때문에 바닥에 바짝 붙어 몸을 웅크렸다.
"소연이는? 집에 또 없는 거야?"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나이 든 여자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우영에게 물었다. 자신의 방문을 미리 알고 일부러 자리를 피한 것이 분명하다며 혀를 차는 여자에게 우영은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가 지를 잡아먹는다니 어쩐다니! 쯧쯧쯧."
챙겨 온 반찬 통의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 우영에게 선보인 후 냉장고의 빈자리에 채워 넣으면서도 여자는 계속해서 소연에 대해 얘기했다. 소연이 언제까지 자신을 불편한 방문객쯤으로 취급하는 것을 지켜만 볼 것인지 따져 묻는 여자에게 우영이 말했다.
"같이 나가서 저녁이나 먹어요, 엄마."
우영이 외투를 챙겨 입는 동안에도 여자는 '이제 동거는 그만하고 결혼을 해야 할 때가 아니냐'라고 쏘아붙였다. 두 사람이 떠나고 집안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집 안에 내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나의 존재를 정말 잊어버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영은 내가 있던 방 문을 꼭 닫은 채 나가 버렸다. 곧 해가 지고 방 안 가득 어둠이 드리웠다. 소연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목이 마르고 배도 고파왔다. 겁이 나고 슬펐지만, 앵-하고 울음을 터트리면 텅 빈 방안을 가득 채울 그 소리가 더 서러울 것 같아서 애써 참았다.
'소연이... 아니! 엄마는 곧 돌아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