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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7. 2024

겨울이의 봄

 소연은 늘 나와 눈을 맞춘다. 배가 고픈지, 졸리거나 지루한 건 아닌지 내 마음을 읽으려고 애썼고 신기하게도 대부분은 내가 필요한 것을 알아내었다. 요즘은 부쩍 '나도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소연에게 '엄마'라고 불러줄 수 있을 텐데... 그들의 말소리를 흉내 내어보지만 나의 소리는 아직 정확하게 가닿지 않는 모양이다. 

  

  봄이 되었다. 베란다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아침 볕이 충분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 계절의 이름이 봄이라는 것을 소연이 알려주었다. 

  "이제 봄이야. 너와 맞는 첫 봄이라서 엄마는 정말 설레어." 

  가늘고 기다란 검지로 내 콧등을 톡톡 두드리며 소연은  내게 말을 건다. 그럴 때면 나는 최대한 가만히 그녀의 눈을 응시하고 그 말들을 잘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마치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처럼 소연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나의 이름은 겨울이 되었다. 소연이 우영에게 겨울이라는 이름이 어떻겠느냐고 물었을 때 우영은 시큰둥했다. 내게 굳이 이름이 필요하겠냐는 듯이,  "흠-" 하고 무성의한 콧소리로 반응할 뿐이었다.

  우영은 처음부터 나를 반기지 않았다. 그들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눈빛과 표정, 몸짓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나는 우영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썼다. 밥투정도 하지 않았고, 처음 몇 주를 빼고는 잠투정도 하지 않았다. 그와 단둘이 집에 남게 되었을 때는 나의 존재 자체를 상기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초인종이 울렸다. 외출한 소연이 집에 돌아온 줄 알고 잠시 신이 났지만 그녀라면 초인종을 누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 때문에 바닥에 바짝 붙어 몸을 웅크렸다.

  

 "소연이는? 집에 또 없는 거야?"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나이 여자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우영에게 물었다. 자신의 방문을 미리 알고 일부러 자리를 피한 것이 분명하다며 혀를 차는 여자에게 우영은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가 지를 잡아먹는다니 어쩐다니! 쯧쯧쯧." 

  챙겨 온 반찬 통의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 우영에게 선보인 후 냉장고의 빈자리에 채워 넣으면서도 여자는 계속해서 소연에 대해 얘기했다. 소연이 언제까지 자신을 불편한 방문객쯤으로 취급하는 것을 지켜만 볼 것인지 따져 묻는 여자에게 우영이 말했다.

  "같이 나가서 저녁이나 먹어요, 엄마."

 우영이 외투를 챙겨 입는 동안에도 여자는 '이제 동거는 그만하고 결혼을 해야 할 때가 아니냐'라고 쏘아붙였다.  두 사람이 떠나고 집안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집 안에 내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나의 존재를 정말 잊어버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영은 내가 있던 방 문을 꼭 닫은 채 나가 버렸다. 곧 해가 지고 방 안 가득 어둠이 드리웠다. 소연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목이 마르고 배도 고파왔다. 겁이 나고 슬펐지만,  앵-하고 울음을 터트리면 텅 빈 방안을 가득 채울 그 소리가 더 서러울 것 같아서 애써 참았다.

 '소연이... 아니! 엄마는 곧 돌아올 거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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