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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03. 2024

엇갈린 마음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바닥에 끌리는 슬리퍼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 틈으로 희미하게 불빛이 스며들었다. 방금 들어온 사람이 소연인지, 아니면 우진인지 확신이 서질 않아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곧 내 이름을 부르는 소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겨울아, 엄마 왔어."  

  방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온 소연이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최대한 "엄마!"에 가까운 소리를 내어보았다. 

 "설마 너, 지금 엄마라고 한 거야?" 소연은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방금 전에 내가 소리를 번이고 따라 했다. 나와 눈을 맞춘 그녀는 감격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우진은 내가 저녁을 다 먹고서 홀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소연의 곁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을 때 캔맥주를 몇 개 사들고 돌아왔다. 그는 소연의 조촐한 밥 상을 흘끗 보는가 싶더니 냉장고로가 몇 가지를 꺼내왔다.  오늘 우진의 엄마가 싸들고 온 새 반찬이었다. 

"이거랑 같이 먹지 그랬어."


  다 먹었으니 괜찮다며 소연은 그릇에 남아있던 밥을 한 번에 털어 넣고 몇 번 씹지도 않은 채 물과 함께 급히 넘겼다. 둘 사이에 전에 없던 묘한 긴장이 흘렀다.  


  안주로 담아낸 새 반찬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맥주를 한 캔씩 땄다.

  "어머니는 잘 가셨고?"  애써 태연한 척하며 소연이 묻자,  우진이 되물었다. 

  "아무래도 우리 엄마가 불편한 거지?"


  처음부터 우진의 엄마를 피했던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동거 계획을 먼저 알리자고 제안했던 것도 소연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진의 엄마는 소연과 아들에게 결혼을 재촉하기 시작했고 소연은 그것이 힘들었다. 

  "우리 이대로 살기로 했던 거잖아. 결혼도, 아이도 없이."

  "그랬지." 우진은 과거형으로 짧게 대답하고서 맥주를 들이켠 후 말을 이었다.

  "그냥, 우리가 진짜 부부가 되고 가족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은. 근데 넌 왜 결혼이 싫은 거야?"

  

  분명 결혼 없는 동거에 합의했던 우진이었다. 자신이 결혼을 원치 않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했고 그도 그녀의 생각을 이해하고 지지한다고 믿어왔던 터라 갑자기 다른 태도를 취하는 그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말했잖아. 나는 결혼을 통해서 우리의 가족이란 범위를 더는 확장시키고 싶지 않다고. 오빠와 나, 이렇게 둘 만으로 충분하다니까."


  우진이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럼, 쟤는? 순전히 네 맘대로 데려와 놓고선 왜 나에게도 가족이라고 부르라는 건데?"  화가 난 우진의 시선 끝에는 겨울이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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