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다는 것 - 여행 준비물 편
여행 짐을 챙길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있다. 어떤 책들을 가져갈까.
여행은 이동 시간, 대기 시간, 쉬는 시간 등등의 자투리 시간들이 많다. 이럴 땐 보통 책을 든다. 누군가 함께 여행하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24시간 붙어있진 않는다. 더군다나 자투리 시간들은 쉬는 시간이다. 이 시간까지 떠들고 싶진 않다.
피곤한데 읽냐고? 촌스럽긴... 오디오북이라는 것도 있다. 하긴 알려줘도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전자책은 흐릿하고 눈이 피곤해, 오디오북은 어색해, 종이책은 무거워... 그냥 읽기 싫은 거다.
사실 활자를 읽는다는 것은 본능이 아니다. 그래서 숨 쉬고 밥먹듯이 자연스럽지도 않다. 더불어 쉽지도 않다. 글을 읽고 쓰려 어렸을 때 얼마나 배웠나 생각해보라. 배웠다고 좋아하기도 어렵다. 이미 우린 짧은 메시지와 실사 같은 영상이 넘치는 시대에 산다.
일상 언어로 된 단문과 단편적 영상은 사고를 확장시키기 어렵다. 여기엔 생각이 필요 없다. 익숙하고 단순한 감각에는 유추하는 노력이 생략된다. 당연히 반추하는 인지적 숙성 과정도 없다. 사는 데는 쉬울지 몰라도 생각의 유연성을 떨어뜨린다.
사실 단방향인 독서보다 할 수만 있다면 저자를 직접 만나는 것이 좋다. 묻고 경청하는 것이 이해하고 사고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소크라테스도 이런 책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눈만 뜨면 광장에 얘기하러 나간 사람이니 당연하겠지만 그의 생각은 맞다.
소크라테스 자신은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설명되어 있는 이유에 따르면, 책이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이해 과정을 단락(短絡)시켜 ‘지혜에 대한 거짓 자만심’을 가진 제자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마사 누스바움 -
읽기와 쓰기가 보편화된 지금 책에 대해 같은 태도일 필요는 없지만 생각해봐야 하는 본질은 같다. 꼭 독서일 필요도 없다. 무엇을 하든지 그것으로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 물론 익숙하고 주어진 것을 반복하면 사고할 거리 자체가 없다. 뇌는 익숙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독이 사고할 시간을 보장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읽은 양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얼마나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문서화, 체계화, 분류, 조직화, 언어의 내면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의식, 의식 자체에 대한 의식 등이 발현할 수 있는 인지적 발판을 제공했다. 이 모든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만들어 준 직접적 요인은 독서가 아니다. 이 모든 능력의 발달에 전무후무한 촉진제 역할을 한 것은 독서하는 뇌의 설계의 핵심인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비밀스러운 선물이다.
- 책 읽는 뇌 | 매리언 울프 -
평범하게 먹고사는 것만 생각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피곤에 절은 퇴근길에는 단순히 즐길 것에 손이 가고 주말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나도 그랬다. 바쁠수록 더 그랬다.
그런데 살다 보니 점점 눈에 띄기 시작한다. 예전엔 비슷했는데 점차 달라진다. 일명 '생의 전환기'를 넘으면 확연히 드러난다. 그동안 살아온 내용, 생각한 시간이 겉으로 나타난다. 나이 들수록 더 뚜렷이.
이건 여행에서도 드러난다. 여행은 낯선 곳에 머무는 것이다. 안면 없는 이들과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되는 일들도 많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면 자신의 인지력과 사고 유연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일단 타인의 의도를 읽지 못한다. 당연히 질문과 대답에서 엉뚱한 것들이 오간다. 순발력이나 응용력도 떨어진다. 어떻게 할지 우왕좌왕하며 해결책을 찾는 대신 투덜거린다. 그리고 내 안에 갇혀서 저 사람이 왜 저러냐고 화낸다.
주변에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라. 남을 보며 나를 되짚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반. 면. 교. 사
이렇게 늙어가는 거... 좀 끔찍하지 않은가? 더 끔찍한 것은 본인들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남이 볼 때 더 잘 보인다.
그래서 가끔이라도 익숙한 것을 벗어나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여행처럼 몸으로 낯선 곳을 들어가는 것이건 독서처럼 남의 생각을 들여다 보는 것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