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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Nov 17. 2016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나를 기억해 줘

북부의 장미, 치앙마이의 별명이다. 과거 Lanna왕조의 수도였고 현재 태국의 2번째 큰 도시이다.


한쪽에선 골프와 코끼리 트래킹을 하지만 다른 쪽에선 코끼리 보호를 위한 서식지를 마련하고 디지털 노마드들이 몰린다. 아이러니함이 섞여있다. 사는 것이 그렇다.


그래도 이 곳엔 동물 보호나 빈곤 아동과 여성 자립을 위해 수익금을 나누는 가게들이 꽤 있다. 기쁘게 여행 경비를 쓸 수 있게 해준다.

현재의 공간에 과거가 함께

타패 문 안의 구도심은 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일상을 산다. 밖에는 대학, 병원, 관공서, 아파트, 쇼핑몰 등등 일반 도시와 같다. 그렇다. 이 곳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특히 구도심의 그 많은 사찰들은 관광객만의 죽은 장소가 아닌 여전히 현지인들의 아끼며 드나드는 곳이다.

난 개발로 밀어버린 서울에 산다. 어릴 적 추억이 남은 곳은 더 이상 없다. 사는 곳이 이러니 유럽처럼 죽어버린 유적이라도 삶터에 끼고 사는 것이 부럽다. 하물며 이 곳처럼 세월을 거치며 현재까지 이용하는 곳은 말해 무엇하랴.


호감이 배움으로 이끈다


치앙마이는 두 번째이다. 첫 방문은 2박 같은 3박이었다. 그나마 하루 전체를 쿠킹 클래스에 참가했다. 시장과 농장을 거쳐 하루 종일 타이 음식을 직접 만들고 먹었다.

여행의 동기 중 하나는 호감이다. 그것이 장소이건 사람이건 문화이건. 그리고 호감은 그곳을 배우게 한다. 그들의 역사를, 언어를, 음식을. 맛보는 것을 넘어 만드는 걸 배운다는 건 그곳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다만, 너무 과했다. 종일 타이 음식을 만들고 먹으니 명절에 전 부치고 냉면 생각이 간절한 것과 같았다. 그 날 저녁 맥도널드로 직행했다. 좋은 것도 과하면 질린다. 과. 유. 불. 급


두 번은 식상하다?


갔던 곳은 식상할 거라 생각한다. 보통 다시 가지 않는다. '아니, 갈 곳도 많은데 굳이...'

하지만 내가 좋았던 곳은 꼭 남에게 소개하고 싶다. 두 번째 여행은 소개였다. 동행인이 감동하는 동안 난 느긋하게 책 읽고 타이 음식을 먹으며 구도심을 걷다 맛있는 타이 커피 한 잔과 마사지를 받을 거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두 번째라는 것이 무색하다. 이전과 같은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작은 골목 골목 아담한 식당들도, 길거리에 수줍게 책 읽으며 엽서를 파는 소녀도, 흐드러진 붉은 꽃이 수놓인 강변도, 낯에 더위를 식혀줄 강변 카페도, 그 카페가 품은 작은 갤러리까지.

여행은 비록 작더라도 언제나 새로운 것을 안긴다. 내가 열려 있다면.


머무르는 여행이 좋다면


물론 내 성향이 크게 작용했을 거다. 난 이동하는 여행보다 머무르는 여행이 좋다. 하루에 휘리릭 둘러보고 짐을 싸서 국경을 넘은 건 내겐 극기 훈련이다. 적어도 2-3일 머물러야 그곳을 볼 수 있다. 길수록 좋다. 매일 봐도 전에 모르던 새로운 것이 생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반복되는 일상은 지옥일 거다.


치앙마이는 머무르기 좋은 곳이다. 사계절 햇빛과 나무로 덮일 수 있는 날씨, 저렴한 물가, 적당히 섞여있는 과거와 현재. 난 여행 중 그곳이 장기로 머물만한지 본다. 아마 이곳엔 다시 올 것 같다. 장기로 머물머 지낼만한 좋은 곳이다.


멋진 카페 안 갤러리에는 눈길을 끄는 그림들이 꽤 있었다. 신인 화가 후원도 하는 듯했다. 그때 엎어왔어야 했다. 가격을 보고 돌아섰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맴돈다.

그리고 아쉬움으로 타패 문 안쪽 어떤 작업실에서 가격에 맞는 그림과 엽서를 고른다. 숙소 앞 길거리에서 냥이들을 스케치한 엽서도 함께.

당신은 여행지에서 어떤 것을 사 오는가? 남에게 줄 선물 말고 당신 자신을 위해 무엇을 사는가?

많은 여행 블로그엔 그곳에서 꼭 사야 할 것들이 나열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여행방 침대 위에 쇼핑한 것들을 늘어놓고 인증샷을 찍어 올린다. 대략 특정 종류의 화장품, 약, 속옷, 가방, 과자, 샴푸, 심지어 치약도 있다.


그곳을 기억하는 방법


난 주로 그림이나 엽서를 산다. 여행 후 그것을 정리해 한쪽 벽에 붙인다. 꼭 그곳을 대표하는 내용일 필요는 없다. 내가 기억하면 된다.

치앙마이의 구도심에선 그곳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다듬으며 현재를 살아간다. 멋진 곳이다.

내 방에서도 과거의 흔적들이 시간을 넘어 현재의 내게 말을 건다. '나를 기억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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