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계획도시 - 폼페이
로마에 4박을 한 이유가 있다. 하루를 통째로 잡은 남부 해안 투어. 폼페이-아말피 해안도로-포지타노-살레르노 경로로 다시 로마로 돌아올 것이다. 물론 가이드와 버스 제공 단체 투어이다. 절벽을 낀 아말피 해안도로를 운전할 순 없다.
첫 장소는 폼페이다. 이곳은 기원전 6-7세기에 건설된 계획도시이다. 기원전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도시 전체가 묻힌다. 아니 기원전에 무슨 계획도시? 물고기 모양으로 구획하고 개발된 곳이다. 도로나 정비된 구역뿐 아니라 물고기 모양이라니. 멋지지? 기원전에 말이다.
영화에서는 극적 연출을 하지만 사실 화산은 터지기 전에 몇 번의 징조를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가장 큰 폭발 전에 이 곳을 나갔다. 마지막까지 떠나지 않은 사람들만이 유적과 함께 지금도 캐스트로 발굴되고 있다.
무너진 유적은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을 토대로 상상해야 된다. 인도와 마차길을 나누어 잘 만들어진 도로, 도로 양쪽의 집들, 이정표와 밤에 발길을 비추던 야광 돌들, 사람들로 가득했을 원형 극장, 하루를 마친 사람들이 두런대던 목욕탕.
특히 목욕탕은 로마인들이 가장 좋아하던 곳이다. 오후 2-3시즘 일과를 마치고 피로를 풀며 담소를 나누었다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로마인보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한다. 그것도 산업혁명 이후엔 시간에 맞춰서.
도시 규모에 비해 목욕탕이 많다. 지금으로 치면 복지시설이다. 국민을 사랑해서? 그럴 리가. 예나 지금이나 그런 권력은 없다. 시민의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로마 초기에 전쟁 용병 비용이 없어 시민이 직접 전투에 참가한다. 그 대가로 국가는 남은 가족을 지켜주고 시민을 대우해야 했다. 그때부터 로마는 시민의 나라였다. 시민이 의견을 내어 토론하고 요구하며 바꾼다. 그래서 광장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권력이 구성원을 대하는 지표는 광장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면 안다.
목욕탕 유적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밀려 가이드 설명을 듣다 보니 선배가 어떤 남자와 서로 째려보고 있다. 뭐지? '저 서양인 남자, 무례하게 계속 쳐다보네'라 했다. 두 사람 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 서로 장시간 눈싸움을 하고 있다. 불쑥 한마디라도 나오면 험악해질 거다. 그래서 튀어나온 말. '러시아인 같아요' 망할 순발력 하고는... 영어가 소용없으니 제발 말하지 말라는 의도였는데...
무시당했다 생각되면 거품 무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래야 할 때도 있다. 권력으로 구성원을, 약자를, 소수를 무시하면 분노해야 한다.
그런데 여행에서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에게 나를 예우하고 존중하라고 할 순 없다. 친절하면 고마운 거고 아니라도 그냥 별생각 없이 혹은 못난 선입견을 가지거나 나와 다른 문화에서 오는 내 착각일 수도 있다. 그런 곳에서 자존심은 부릅뜬 눈이 아닌 여유와 격에서 지켜진다.
무례함에 치를 떨었으면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하면 된다. 그런데 나와 남의 기준은 다르다.
식당에서 가이드와 셋이 앉는다. 난 지금 말없이 먹기만 하는 사람과 고객이라 어려워하는 한 사람 사이에 있다. 아마 나보단 가이드가 더 불편할 거다. 저리 먹음 체할 거다. 그래서 사교성이 바닥인 내가 나서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혈족 사회 오지라퍼들로 서로에게 간섭을 서슴지 않는 우리는 낯선이와 잠깐의 시간을 즐겁고 흐뭇하게 보내는 방법에는 너무 서툴다. 자존심보다 소중한 시간이 있다는 걸 안다면 서로에게 더 따뜻해질 수 있다.
아무에게나 말을 걸 수 있는 건, 자존심보다 소중한 시간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한 명이라도 더 알고 싶은 마음. 같이 죽어가는 이들에 대한 한없는 동지애. 시간이 영원할 줄 아는 젊은이들은, 우연히 마주친 시선이 두렵고, 불편할 뿐이다. 나는 좀 더 늙어야 한다.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 박민우 저
사실 내가 이 가이드 또래에게 더 각별할 수 있다. 사회에 발을 디디기 바로 전에 IMF가 터졌다. 그래도 난 경제성장 막차에 올라탄 세대이다. 받은 것과 누린 것에 감사한다. 한편 내 다음 세대가 사는 모습이 안쓰럽고 이렇게 만든 거 같아 미안하다. 더군다나 이 아이는 해외에서 일하지 않은가? 자의일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선 서러울 거다.
동행자가 있다면 여행엔 일상이 섞인다. 일상에는 사소하고 자잘하며 내보이기 싫은 지질함이 있다. 이것이 싫다면 혼자 여행해야 한다.
동행자를 둔 여행이라면 상대에게 적당히 둔감해져야 한다. 그래야 내 여행을 할 수 있다. 감정을 저지르지 않고 넘기면 시간이 당시 감정을 옅게 도와준다.
당시에는 씩씩거렸어도 돌아보면 망친 여행은 없다. 24시간 같이 있는 사람과 내내 좋을 것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나 자신조차도 좋았다 싫어다 하지 않던가? 숙달되면 씩씩거림을 감추며 웃고 넘길 수 있다. 그래야 끝까지 같이 여행할 수 있다. 이건 반복하면서 경험으로 배운 거다. 항상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것도 없으며 멋져도 후져도 배울 것들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