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와 들어와...
여행엔 동기가 있다. 스페인 여행은 가우디였다.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가우디의 생애와 건축물을 보면서 '저길 가봐야겠다'했다. 난 단순하고 쉬운 사람이니까.
당연히 바르셀로나 체류 일정을 가장 길게 잡았다. 그리고 여정을 적당히 비웠다. 계획과 준비로 무장된 완벽한 일정은 '해야 할 숙제'이다.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은 재미없다. 그건 일상에서 해도 된다. 반즘 계획한 여정에 빈틈과 우연이 뒤섞이면 비로소 내 여행이 시작된다.
완벽함과 모자람 사이의 장소, 모든 것들의 중간 상태가 좋아요. 그런 곳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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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절반이 차 있는 잔이 좋아. 다 차 있으면 더 채울 게 없잖아. 그 절반을 보면서 가득 찬 잔을 기대하는 거지. 그게 사는 재미잖아.
- 행복한 멈춤 STAT | 박민우 -
우리에겐 바르셀로나이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까딸루니아'라고 부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구도시로 스페인 지역 중 부유함을 유지하고 있다.
이 부가 옆 나라 여왕이었던 이사벨 1세 의지로 정복전쟁과 대항해시대 자금으로 쓰였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여기가 스페인을 먹여 살렸고 살린다' 즘 되겠다. 이후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를 거치며 남겨진 상처들이 아직 존재한다. 한국의 광주와 비슷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훨씬 심각하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밑도 끝도 없이 미움을 받고 싶다면 바르셀로나 거리를 레알 마드리드 축구복을 입고 걸으면 된다. 아마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 온갖 욕설을 들을 것이다. 이 분들의 젊은 시절, 가족과 친구들이 마드리드 표준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지금도 집에 까딸루니아 국기를 달고 스페인에서 독립하기를 원한다.
까딸루니아 공화국 파이팅!!! 사실 덩치만 키운 국가는 개인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된다. 규모가 커져서 발생한 부는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소수에 집중된다. 인간의 본성인지 공존 유전자가 열성인지 알 수 없지만. 규모의 경제와 그에 따른 낙수효과는 개개인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당신이 상위 1%가 아닌 한.
이 곳의 역사를 모른 채 들어섰다. 오로지 소매치기 걱정과 더불어 해맑게 가우디를 외치며... 이 도시는 최근 로마를 누르고 소매치기 1위에 올랐다. 여행 전부터 도시에 들어선 한동안 스트레스였다. 나갈 때마다 긴장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적당히 조심하면 되는 거였다. 완벽한 안전함을 추구하고 싶다면 그냥 집에 있으면 된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은 비슷하다. 이 동질감은 그곳에서 보낸 시간과 그들의 역사를 아는 깊이에 비례한다. 그리고 마침내 작게라도 동질감을 찾으면 위협은 사라진다. 마지막 이틀을 남겨놓고 나도 소매치기가 가장 극성인 곳에 편안하게 다녀온다. 람블라스 거리를 지나 구도심.
최고의 여행은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로 향하는 여행이다. 그것이 굳이 매력 있는 개인이 아니더라도.
여행 중 최고는 사람을 향해 가는 여행이다. 거대한 산맥보다 더 장엄하고, 한낮에 퍼붓는 소나기보다 더 예측하기 힘들다. 그리움이라는 후유증도 심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이다.
-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 박민우 -
이제 가우디를 찾으러 간다. 그 길에 예상도 못한 가우디 제작 보도블록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흔한 길 위에, 비 오는 날 물이 흐르면 그 아래 바다가 펼쳐진다. 이 할아버지 꽤 멋있다!!!
건축물엔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겉보단 안에서 더 잘 드러난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밖에서 한 바퀴 둘러보는 조각이 아닌 것이다.
보통 성당은 파사드라는 입구의 장식에 많은 공을 들인다. 가우디의 사그라 파밀리아도 파사드가 멋있긴 하다. 친구 표현으로는 '매드 맥스' 같다고 하지만
그러나 예상 못한 반전은 안에 있다. 어둡고 칙칙한 고딕 성당을 지웠다. 높은 층고를 유지하는 방식은 나무에서 따왔다. 이 사람의 고민이 보인다. 뚝딱 나온 것이 아니다. 두고두고 고민했을 것이다.
천재성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대상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고민하는 시간들이다.
이 성당 내부는 확실히 충격적이다. 비교적 현대에 지어졌음을 감안하더라도. 그렇지만 이곳은 신의 집이다. 나에겐 인간이 사는 현실적인 곳이 더 매력 있다. 카사 바요트 같은 곳.
한국말로 바요트씨 집이다. 가우디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초기 의뢰받아 만들었고 완공 당시 악명이 높았다. 일명 뼈로 만든 집. 겉으로 보기에 기괴하고 음산해 보여 지나가는 아이들은 울었다고.
이 곳도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겉에선 모른다.
들어가는 입구의 물결치며 곡선을 이룬 계단이 보인다. 계단 끝에 바다를 보는 듯한 전면 창의 응접실이 나타난다. 응접실 천정에 막 떨어진 듯 한 물방울과 구름에 쌓인 해가 빛난다.
마치 배를 타고 넘실대는 파도를 마주하는 듯한 엘리베이터와 계단, 아가미와 흡사한 블라인드까지... 밖에서 보는 그로테스크함을 날려버린다.
방과 방사 이를 잇는 복도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곡선을 가져다 놓았다. 이 둥근 길을 따라 굽이 굽이돌면 화려한 타일의 옥상이 기다린다.
밖에서 본 건물 외관과 비교해보라. 내부에 이런 모습이 있을 거라고 상상이 안된다.
건물 안의 곳곳에 지은 사람의 고민이,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특이하고 자연스러우며 아름답다.
여행은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곳의 사람들과 그들이 남겨 놓은 역사를 마주하는 것이다. 기대 이상의 감동은 겉에서 맴돌면 절대 나오지 않는다. 한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도시도, 건물도, 사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