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고찰 7 : 한 달 반의 외유를 마치고 시차적응을 하며
한 달 반의 외유를 마치고 귀가했다.
이제 귀국 이틀째이다.
주변의 지인들이 전화를 해오면 가장 먼저 묻는 말은 두 가지이다.
'시차적응은 잘 되고 있냐? 여독은 풀렸냐?'
물론 여행의 재미를 묻는 말도 항상 물어본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인사치레이다.
진짜 묻는 줄 알고 진지하게 대답하면 안 된다.
뭐가 재미있었고 뭐가 신기했고, 뭐가 의미 있었고... 이런 것을 나열하면 곤란하다.
적당히 재미도 있지만 고생도 했고, 결국은 돌아오니 좋다로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무난하다.
그럼 상대방도 바로 '그래 맞아, 나도 얼마 전에 00 다녀왔잖아!..'로 시작하며 자신의 외국여행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결론은 '집이 최고야'로 마무리 지는 답정너이다.
자, 이제 제목대로 시차적응에 대한 내 의견을 풀어보겠다.
시차적응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시차적응이란 시간대 차이로 인해 생기는 생체리듬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간대에 몸이 적응하는 것. 주로 장거리 비행 등으로 여러 시간대를 이동했을 때, 수면 패턴이나 생체시계가 현지 시간에 맞게 적응하는 과정을 뜻한다.
사람의 몸에는 약 24시간 주기로 반복되는 생체리듬(일주기 리듬)이 있는데, 시간대가 바뀌면 이 리듬이 깨지면서 피로, 졸음, 소화불량, 집중력 저하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거나 적응해 가는 과정을 시차적응이라고 한다.' (출처; CHAT GPT)
나는 삼십 대, 사십 대, 오십 대에도 자주 해외여행을 다녔다.
그때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당연히 시차적응이었다.
외국에 가서도, 귀국해서도 그 난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때는 수면제나 수면보조제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존재했고 더구나 구하기도 쉽지 않았기에 그냥 생으로 버텨야 했다.
수면시간이 매일 한 시간씩 현지 시간에 맞춰지면서 최소 일주일은 걸려야 본래의 궤도에 돌아왔다.
(사실 이건 텍스트로는 쉬운 얘기지만, 실제적으로는 아주 어려운 과제이다. 대충 그 언저리에서 맞춰지면 고마울 뿐이다.)
미련 맞게도 개학날까지 꽉 채워 귀국하여 다음날 출근한 적도 있었는데 그땐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새벽 세네시까지 못 자기도 했고, 그러다 최악은 늦잠이 들었으나 결국 6시에 일어나서 비몽사몽의 상태로 출근을 한 적도 있었다.
그땐 영락없이 사지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무기력해지고 예민해졌다.
그러나 오십 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차적응이 필요 없는 나이가 되었다.
아주 기쁜 일이다.
왜 시차적응이 필요 없냐 하면 이미 통잠을 잘 수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새벽에 두어 차례 정도 깨는 것은 일상이다.
그리고 십여 분 안에 다시 잠이 들면 아주 운이 좋은 것이고, 대부분은 뒤척이다가 못 자거나 애매하게 기상시간에 임박하여 잠이 들기 일쑤이다.
갱년기부터 시작된 수면에 대한 고통은 내 또래 여성이라면 누구나 질병인 듯 증상인 듯 그 중간쯤에서 꽤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결국 일상에 대한 파괴가 시작될 정도로 고통이 심해지면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감당할 정도의 고통으로 그럭저럭 지금까지 살고 있다.
지금은 통잠을 못 자는 몸이 된 지 어엿 십여 년이 되었기에 시차적응에 대한 강박도 고통도 없다.
그러려니 한다.
현실은 참혹함을 동반한 포기이지만 맘을 바꾸니 덜 괴롭다.
어차피 못 잔다는 현상은 변하지 않지만 내 시각을 바꾸니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시각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두 가지이다.
첫째는 수면보조제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멜라토닌의 사용이다. 요즘은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수면에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10%의 이유 밖에 되지 않는다.
9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두 번째 이유가 더 중요하다.
바로 출근에 대한 압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수면부족으로 출근 후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고통들이 한 큐에 소멸됨은 어떤 수면제보다도 명약이다.
낮에도 책 읽다 졸리면 자면 된다.
백수는 시간을 지 맘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최대의 장점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들한테 톡이 왔다.
'시차적응은 잘 되고 있냐?'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랬다.
'원래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새벽에 두어 차례 깼어.
그리고 그 루틴은 귀국 후에도 잘 지켜지고 있단다.
그 루틴이 깨지는 게 도리어 시차적응을 못하는 반증 아니겠니? ㅋㅋ
걱정 마라. 백수의 장점을 잘 누리고 있으니까~!'
아들은 다음의 이모티콘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뭐가 최고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내가 잘 지내고 있고 걱정 말라는 표현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자신의 걱정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안도감에 대한 표현인 거 같기도 하다.
어느 부모가 자식한테 걱정을 끼치는 말을 하겠는가?
그래서 이것 역시 답정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