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Boston 15. 도서관도 관광지라고요?

여행 16: BPL(보스턴공공도서관) 탐방기

by 게을러영

Visitor인데 Resident처럼 지내요.(14)


한국에서도 도서관은 나의 최애 공간이다.

도서관의 그 고요도 좋고 책에 둘러 싸인 환경이 주는 자정감에, 책을 읽던 안 읽던 항상 평온과 자존감을 높여주는 곳이다.

보스턴에 와서도 근방에 있는 보스턴 도서관, 캠브리지 도서관, 서머빌 도서관을 차례로 다녀 볼 생각이었다.

미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공공도서관이자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문화유산 중 하나인 보스턴공공도서관(BPL:Boston Public Library)은 보스턴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꼭 들러야 할 곳이었다.



1895년 완공된 웅장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 본관인 맥킴 건물(McKim Building)이다. 약간의 비가 부슬거려서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사진을 찍다가 다 안으로 들어가서 나도 따라 들어갔다.

들어가지 마자 노란색 대리석과 큰 사자가 양 옆으로 있는 웅장한 중앙 계단과 프레스코화는 입을 다물 수 없게 했다.

두 개의 사자상은 각각 미국 남북전쟁에서 희생된 보스턴 출신 연대를 기념하려고 세웠다고 한다.

사자상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각인이 새겨져 있다.


'In memory of the men of the Second Massachusetts who fell in the war for the union.'

연방(Union)을 위한 전쟁에서 전사한 매사추세츠 제2 보병 연대 장병들을 기리며

'In memory of the men of the Twentieth Massachusetts who fell in the war for the union.'

연방(Union)을 위한 전쟁에서 전사한 매사추세츠 제20 보병 연대 장병들을 기리며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 이탈리아산 카라라 대리석(Carrara marble)은 웅장함을 더한층 높인다.



다음은 BPL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베이츠 홀(Bates Hall)이다. 책상마다 개개인의 자리에 있는 초록색 스탠드가 너무 이쁘다. 해리포터의 마법 학교의 모습 같다. 사실 호크와트 도서관은 너무 흡사해서 여기서 촬영한 게 아닌가 싶어서 찾아봤더니 영국의 옥스퍼드 도서관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왜 하필 녹색 스탠드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녹색은 눈에 피로를 덜 주는 색이라 독서할 때 장시간 집중해도 시야에 부담이 적기에 사용자의 눈을 보호하기 위함으로 설치했는데 결국 이것이 베이트홀의 상징이 되어 역사적·심미적 분위기를 한층 더 업시켰다.

잠깐 나도 앉아서 분위기를 느껴봤다. 책이라도 한 권 가져와서 읽을 걸.. 좀 아쉬워서 귀국 전에 한 번 더 들릴 생각이다.



그다음으로 가본 곳은 사전트의 벽화로 둘러싸인 Sargent Gallery였다. 미국에 와서 알게 된 화가로써 지난번 이사벨라스튜어트가드너 뮤지엄에서 본 '엘잘레오'에 대한 감동이 커서 그다음부터는 어디를 가든 존 싱어 사전트의 그림을 찾게 되었다. (참고: in Boston12. 친절하지 않은 박물관)

미국 도서관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상징주의 벽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 작품들은 'The Triumph of Religion' (종교의 승리)라는 주제로 인류가 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표현해 왔는지를 고대 이교, 유대교,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철학적·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프레스코화(fresco)와 오일 페인팅을 혼합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어둡고 경건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나타낸다. 사전트는 건강 악화로 인해 1925년 사망한 관계로 계획했던 전체 벽화 시리즈를 완성하지 못했다.



앞 건물인 맥킨건물이 백 년이 훨씬 넘은 고풍의 느낌이라면 후관인 존슨 건물 (Johnson Building)은 1972년에 개관된 현대식 건물로써 2016년에 리노베이션 되어 디지털 자료관, 아동실, 카페, 전시 공간 등이 있다.

여기는 대형 창문과 개방감으로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이면서 붉은색이 주로 된 인테리어를 선보인다. 정사각형 형태의 단순하고 기능적인 외관과 회색 콘크리트와 유리로 구성되어 모던함이 극대화되어 있다.



특히 인상적인 곳은 바로 아동열람실(Children’s Library)이었다.

나는 어디를 가든 항상 그 지역의 도서관을 꼭 들리는 편인데 그리고 아동열람실도 여러 곳을 가봤지만, 가본 곳 중에서는 이곳이 최고였다.

내부는 다채로운 색상과 자연 채광이 비치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부드러운 곡선 형태의 가구들로 꾸며져서 밝고 생동감이 있었다. 연령대별로 분류하여 각 연령대에 맞는 가구 높이와 독서 환경 등이 제공되고, 다양한 장난감과 퍼즐등이 비치되어 놀이와 독서를 접목한 환경이었다. 책과 함께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 같은 도서관은 아이들의 상상력이 자라는 최고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음으로 마주한 공간은 바로 중정 정원(Courtyard)이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수도원을 모티프로 설계되었다는 이 공간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올 만큼 매혹적이었다.
대리석 아치와 기둥들이 사방을 감싸는 정사각형의 중정 구조는 단정하면서도 우아했고 그 중심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겨운 분수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수대의 중앙에는 ‘Bacchante and Infant Faun(바카스 여신과 파우누스 아기)'라는 청동 조각상이 놓여 있었는데 그 존재만으로도 이 정원에 예술의 기품과 신화적 상상력을 더해주고 있었다.

아치형 회랑(콜로네이드)은 고풍스러운 대리석 아치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나무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어 독서를 하거나 담소를 나누기에 더없이 완벽한 분위기였다.
햇살은 살포시 회랑 사이로 스며들었고 나는 그 따사로운 빛 속에서 잔잔한 분수대를 쳐다보며 물멍을 하였다. 감탄을 연발하며 도서관을 둘러본 마지막 소감은 평화 그 자체였다.

그저 햇살을 바라보며,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그 아름다운 정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보스턴 공공도서관을 둘러본 뒤, 내 마음에는 부러움과 함께 아쉬움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성균관을 비롯한 각 지방마다 공립기관인 향교와 사립학교인 서원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내가 사는 곳에도 향교와 서원은 있지만 특수한 행사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항상 문이 잠겨있는 형편이다.

그저 외관만 둘러볼 뿐이다.

만약 우리도 그 향교를 지역의 도서관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그에 어울리는 현대 건축을 더해 공간을 확장해 나간다면, 금상첨화일텐데...

관리의 차원에서 쉽지 않은 일이라 아마 선뜻 시도해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보다는 새 건물을 짓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녔음에도, 수많은 외침과 전란 속에서 문화유산의 상당수가 파괴되거나 소실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들이 있고, 그 하나하나가 깊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것들은 대부분 ‘관람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며, 현재의 삶과 함께 숨 쉬는 공간으로는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늘 아쉽다.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인데도 불구하고 보스턴공공도서관처럼 건국 초창기에 지어진 건축물을 여전히 일상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화유산은 단지 보호받고 보존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현재와 연결되어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을 그들은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그 안에서 지식과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는 모습이 진정한 문화의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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