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Boston20. 미술책에 있던 화가가 다 있네

여행 21 : 세잔,로뎅,드가,뭉크 등의 작품. MFA Boston 5

by 게을러영


Visitor인데 Resident처럼 지내요(20)


베레모를 쓴 자화상, 1898~1900 (좌) / 도미니크 삼촌 1866 (중) / 붉은 안락의자에 앉은 세잔 부인, 1877 (우)

이 세 작품은 모두 프랑스를 대표하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폴 세잔(Paul Cézanne)의 것이다. 후기 인상파의 특징은 빛과 순간의 인상을 강조했던 인상주의와는 달리 형태와 구조에 집중한 점이다.

세잔은 사물을 단순화하면서도 다양한 시점에서의 구도를 사용했는데 이것이 피카소 등의 입체파 미술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했다.

그는 30년 동안 자화상을 꾸준히 그렸는데 이 <베레모를 쓴 자화상>은 말년에 그린 것으로 광대뼈와 이마를 평면으로 표현하였다. 이렇게 한 의도는 자신을 객체로 인식하여 거의 추상에 가깝도록 묘사한 것이고, 눈과 입을 자세히 그리지 않은 것도 심리적 거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도미니크 삼촌>은 그의 외삼촌을 그린 것으로 도미니크는 최소 열 번 이상 그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붓이 아닌 팔레트 나이프로 두껍게 칠한 것이 특징이다.

세잔의 아내 오르탕스 피케는 세잔이 가장 자주 그린 모델로 거의 30점의 초상화에 등장했다. 그녀가 모델로 세워진 가장 큰 이유는 인내심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만큼 움직이지 않는 모델을 찾기 어려웠고 그나마 그의 아내가 그 조건에 충족되는 사람이었다. < 붉은 안락의자에 앉은 세잔 부인>에서 그녀의 무표정은 그녀를 가깝고도 멀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고, 얼굴에 묻은 녹색 물감은 더욱 자연스러운 그림자를 연출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나타낸다.



오귀스트 로뎅 <푸쉬케>1899 (좌) / 드가 <14세 소녀 무용수> 1878-81 (우)


드가 <머리를 숙인 말> 1919

그 유명한 오귀스트 로뎅의 <푸쉬케>는 하나의 결점도 용납 안 할 것 같은 투명한 상아빛 대리석으로 만든 작품이다. 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인체의 곡선을 유려하게 표현하였다. 돌이 아니라 비누로 조각한다 해도 이처럼 양감과 질감을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 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인체의 곡선이 유려하게 표현되었다.

과장되게 구부정하게 서 있는 푸쉬케는 흘러내리는 머리카락과 휘장에 싸여 있어 비밀스러움을 더한다. 이 작품은 사랑과 욕망의 신인 큐피드의 연인이었던 프시케가 잠자는 연인을 몰래 엿보려고 했던 은밀한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드가의 <14세 소녀 무용수>는 참 특이한 작품이다. 작품의 소재가 청동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리본과 치마를 거즈와 새틴을 이용하여 표현하였다. 이런 콜라보는 참 창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작품이 발표된 당시에는 천박하다는 비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드가의 현존하는 작품 중 제일 크며, 그가 제목을 붙이고 전시한 유일한 작품이다. 벨기에의 젊은 무용수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졌는데 원본인 왁스 버전은 살갗과 비슷하게 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비평가 J.K 위스만스는 '내가 아는 조각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현대적 시도를 한 작품'이라고 극찬하였다.

드가의 <머리를 숙인 말>은 자세히 볼수록 감탄이 나오는 작품이다. 머리를 숙이고 살짝 왼쪽으로 돌린 말머리와 벌린 입은 어찌 보면 힘에 부치는 듯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시시덕거리는 거 같기도 하다. 왼쪽 앞다리는 끊김을 주어 앞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최대화했다고 한다. 이 청동 주조의 말에 대한 생동감을 표현하기 위해 드가는 경마장에서 수없이 말의 움직임을 기록했다고 한다. 예술가가 얼마나 끊임없는 연구를 하여야만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폴 시냐크 <콘스탄티노플의 골든 혼과 소피아 성당>1907 (좌) / 피에트 몬드리안 < 돔뷔르흐의 다섯 개의 부두가 있는 해변> 1909 (우)

폴 시냐크(Paul Signac)는 프랑스의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 화가이자 이론가로,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함께 점묘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쇠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그린 점묘주의의 창시자이다. 이것도 중학교 미술책에서 본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아직 직관을 하지 못한 아쉬움에 찾아보니 미국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오!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다. 이제 그곳을 찾아야 할 명분이 생겼다. 나만 아는 동기유발 작동 버튼이 울리기 시작한다.

<콘스탄티노플의 골든 혼과 소피아성당>은 딱 봐도 점묘화법이다.

사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오! 붓으로 찍어서 그렸구나.'라고 단순히 규정지을 수 있겠지만, 저렇게 점묘법으로 그리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나도 몇 번 흉내 내어 봤지만, 전체적으로 구도와 명암을 생각하면서 붓으로 찍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그림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 보다.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의 옛 명칭으로 우리에겐 아직도 터키로 익숙한 튀르키예의 최대 관광지이다.

골든 혼은 이스탄불의 자연 항만으로 석양이 아름다운 곳이다. 나도 저 골든혼에서 일몰을 보았기에 더 정이 가는 그림이다. 시나크는 열정적인 요트맨으로 많은 곳을 요트로 여행했다고 한다. 그림에서 보트가 가장 앞에 위치한 것도 그의 보트 사랑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몬드리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수직과 수평 그리고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으로만 이루어진 격자 구성의 그림이다. 너무나 단순하고 명쾌하여 '이런 건 초등학생도 그리겠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작품들이다. (누구나 흉내는 낼 수 있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먼저 생각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대가는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신조형주의 그림들은 강렬한 추상성이 특징인데, 이 < 돔뷔르흐의 다섯 개의 부두가 있는 해변> 은 몬드리안이 추상화로 넘어가기 전에 그린 풍경화로 나에게는 구상으로 다가와서 친밀감을 주었다.

아직 그림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나로서는 추상은 여전히 어려워서 감동을 주는 것은 구상화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몬드리안이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휴양 도시인 돔뷔르흐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밝고 짧은 파란색과 보라색 선으로 모래사장에 활기를 주고, 짙은 갈색톤의 오른쪽의 모래언덕과 차별성을 두었다. 중간에 일직선으로 보이는 것은 나무로 된 부두(pier)로 수평선을 따라 잘 배열되어 있다.

그림의 의미를 이해하고 보니 저런 규칙적인 부두 처리가 결국 신조형주의의 조짐을 보이는 것이었구나 싶었다.


뭉크 <여름밤의 꿈(목소리)> 1893 (좌) / 뭉크 <잉에보르 카우린> 1912 (우)

둘러보다 뭉크를 발견하니 옛 친구를 만난 것 같이 반가웠다.

지난번 ‘하버드 아트미술관’에서 두 번이나 뭉크전을 자세히 보고 공부도 하였더니, 뭉크 그림을 한 번에 알아챌 수 있는 안목이 생긴 것이다. 그전까지 뭉크 하면 '절규'만 알았던 내가 그 전시회를 통해 뭉크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는 기술과 예술을 접목하여 끊임없이 변화와 창조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계속 만들어내는 사업가적인 기질을 지닌 화가이자 판화가였다. 그 뭉크를 이렇게 보스턴 미술관에서 또 만나니 반가움이 배가되었다.


뭉크는 고흐와 고갱의 색채와 형태 사용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삶과 사랑, 죽음을 시적으로 다룬 'The Frieze of Life(삶의 프리즈(연속성)'라는 연작을 만들었는데 그중에 그 유명한 '절규(The Scream)'가 있고, 사랑을 주제로 한 연작의 첫 번째 작품인 <여름밤의 꿈>은 사춘기의 성적 각성과 첫 감정의 떨림을 표현한다.(사진 1) 작품 속 사람의 형태와 주변이 희미하고 몽환적이어서 시간을 통 가름할 수 없다. 노르웨이의 보레 숲(Borre Forest)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숲은 전통적으로 젊은 남녀들이 사랑을 속삭이던 장소라고 한다.


<잉에보르 카우린>은 뭉크의 작품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 둥근 얼굴과 넓게 떨어진 눈을 특징적으로 묘사하였다. (사진 2) 이러한 얼굴 특징은 뭉크의 판화와 회화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은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붓 터치가 돋보이며 이런 표현 방식이 훗날 '표현주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보스턴 기행 첫 편인 '뭉크는 뛰어난 사업가였다'에서 마지막에 소개했던 <붉은 드레스를 입은 잉거>이다.

이 작품과 <잉에보르 카우린>이 다르지만 뭔가 비슷한 느낌도 갖게 되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둘 다 유화이지만, <붉은 드레스를 입은 잉거>가

<잉에보르 카우린>보다 20년 먼저 그려진 그림으로 초기 표현주의를 표현한 데 비해, 후자는 후기 표현주의 스타일이라 색채가 훨씬 대담해졌다고 한다.

내가 봐도 후자가 녹색의 표현이 훨씬 거칠고 다양하며 대담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잉거>가 더 맘에 든다. 뚱한 표정의 카우린보다 편안한 웃음을 짓는 잉거의 모습이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개성이 더 드러난 카우린 그림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을텐데, 나이를 보태면서 까칠한 것보다 편안함을 찾게 되는 무난함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처럼 그림을 보는 시각도 해마다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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