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Boston 19. 고갱이 묻고 우리가 답하다

여행 20: 고갱의 작품에 대한 감상, MFA Boston-4

by 게을러영

Visitor인데 Resident처럼 지내요(19)


모네 갤러리(Gallery 252)의 바로 옆에 있는 Impressionism & Beyond(Gallery 255)는 완전 보물들만 집대성한 곳이었다. 후기 인상주의 및 상징주의 작품들이 가득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한 벽을 몽땅 차지하고 있는 폴 고갱((Paul Gauguin)의 걸작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였다. 크기가 무려 가로 3.75m, 세로 1.4m에 달하는 거작이었다. 그의 철학적, 종교적, 인생적 사유를 응축한 유언 같은 작품이라고 한다.

중학교 미술책에서 볼 때는 조악한 인쇄 상태로 인해 그다지 감동도 오지 않았고, 더욱이 크기는 전혀 가름할 수 없었는데... 입이 딱 벌어졌다. 예전 오스트리아에서 구스타프 클림프의 키스를 직관했을 때의 감동과 충격만큼 컸다.

20250529_142159.jpg 폴고갱((Paul Gauguin)의 걸작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1898

고갱은 타히티에서 삶을 정리하며 유언장처럼 마지막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고 스스로 밝혔다.

실제로 이 그림을 완성하고 아편으로 자살 시도를 했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마지막 작품은 되지 못했고 그가 원했던 극적인 연출은 실패했다.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해석하는 게 정설인데 그것은 바로 삶의 시작과 끝 그리고 존재의 의미로 읽힌다.


오른쪽 아랫부분의 어린아이는 순결한 생명의 탄생과 시작을 상징한다. 화면 밖의 관객과 눈을 맞추는 듯한 젊은 여성 세 명은 타이티 섬의 공동육아를 표현하는 것이다. 뒤의 어두운 그림자와 무표정한 인물들의 배치로 신비롭고 초월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즉 이 부분이 'Where Do We Come From?(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해당한다.


중앙의 과일을 따는 여성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딴 이브를 연상시키며 유혹과 죄의 상징하고, 인간 존재의 쾌락과 고뇌를 담고 있다. 이 부분이 바로 'What Are We? (우리는 누구인가?)'이다.


마지막으로 왼쪽 아랫부분의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노파는 죽음을 앞둔 두려움과 체념을 상징하면서도 그의 눈동자에는 살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그 옆의 흰새는 헛된 말의 무위와 침묵을 의미한다.

왼쪽 뒷부분에 위치한 타이티의 신상은 마치 인간의 생로병사와 삶의 역정을 관조하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Where Are We Going?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왼쪽 상단 구석 노란색 부분에 원래의 프랑스어 제목인 D' où Venons Nous / Que Sommes Nous / Où Allons Nous를 넣었다는 점이다. 그림의 오른쪽 위 노란색 귀퉁이에도 왼쪽 상단과 마찬가지로 P. Gauguin이라는 본인의 서명과 1897이라는 그림의 제작연도를 써넣었다. 고갱은 이 작품이 벽화처럼 보이기를 원하여 의도적으로 저렇게 표현하였다고 하는데 아마 자신의 그림이 벽화처럼 영구적으로 보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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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브르탸뉴 여인이 있는 풍경> 1889 (좌) / <여인들과 백마> 1903 (중) / <전쟁과 평화> 타마누나무 채색, 1901


1886년에서 1891년 사이 고갱은 프랑스 북서부 브르탸뉴 지방의 시골 마을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는데 이 <두 브르탸뉴 여인이 있는 풍경>에도 드러나듯이 이 지역의 사람들은 독특한 관습과 복장으로 종교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언뜻 보면 오른쪽의 여성은 기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왼손에는 과일 한 조각을, 오른손은 칼을 들고 있다고 해설에 쓰여 있었다.


고갱은 마르케사스 제도에 있는 외딴 태평양의 섬 하바오아에 거주하며 자신의 집 주변 풍경을 그리면서, 만성 매독과 심장병으로 마지막 생을 마감했다. 우거진 열대 식물과 그 지역의 여성들과 백마를 그린 <여인들과 백마>에서 언덕 위에 있는 조그만 십자가는 후에 그가 영원히 잠든 묘지를 나타낸다고 한다.


고갱은 회화만 한 것이 아니고 이렇게 조각도 하였다는 것을 요번에 처음 알았다. 그가 원주민을 표현한 방식은 조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작품의 이름은 <전쟁과 평화>인데 타이티에서 서식하는 나무에 조각하여 채색한 것으로 목재 부조이다. 상단이 '평화'이고 하단이 '전쟁'이다.

이 작품에서 고갱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낙원에 대한 갈망을 반영하고 있다. 하단이 '전쟁'임을 알 수 있도록 전사나 궁수가 보인다. 그러나 꽃도 많이 등장하고 특히 가운데 남자에게 화관을 씌운 모습은 참 아이러니하다. 하긴 전쟁도 삶의 일부니까. 상단의 '평화'는 딱 봐도 목가적인 분위기의 차분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고갱은 그리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는 게 중설이다.

고호가 자기 귀를 자른 시기도 고갱과 함께 살았던 그때였고, 끊임없이 자신의 양심과 싸우며 고갱을 흠모한 고흐에 비해 고갱은 자신의 명성이 쉽게 드러나지 않음에 실망하고 프랑스를 떠나 타이티를 비롯한 여러 섬으로 숨었다. 거기서도 원주민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고 한다.

13세 미성년자와의 결혼,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혼, 원주민 여성을 버리고 파리로 돌아간 점, 또 많은 원주민 여성들에게서 낳은 자식들도 버렸다는 점 등 그의 행동들은 무책임했고 사회적 지탄을 받기 충분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때는 그의 예술적 업적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와 도덕성, 그리고 반성과 사과의 유무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최소한의 공감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삶이라면, 우리는 그 삶의 가치를 과연 논할 필요가 있을까?

고갱이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그릴 때, 자신의 방종한 삶을 진심으로 반성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천재성만으로 모든 흠을 덮을 수는 없다.

결국 예술도 '어떻게 살았는가?'의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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