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2 : 보스턴미술관 총평. MFA Boston-6
Visitor인데 Resident처럼 지내요(21)
이 분이 누굴까요?
아마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맞다.
예상한 대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이다.
박물관 복도 한쪽에 있는 이 작품은 다니엘 체스터(프랑스)의 청동주조상이다.
그럼 이 작품의 제목은 뭘까?
이건 절대 눈치 못 챌 것이다.
<PLEASE TOUCH!(제발 만져주세요)>
두 눈을 의심했다.
다시 봐도 맞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관람객들의 손에서 나오는 소금과 기름으로 작품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만지지 말라는 경고문이 쓰여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예외이다. 청동으로 만든 것이기에 관람객은 누구나 만져서 청동의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제작되어 있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 무르팍, 손등, 구두 등 몇 군데가 아주 밝은 색이다. ‘자체발광’이 아닌 ‘손때발광’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입장 시 가방과 소지품을 엑스레이에 통과하여야 하는 경우가 꽤 있다. 물통, 우산, 셀카봉 같은 것을 지참할 수 없는 것도 상례이다.
모든 갤러리마다 안내원들이 서 있지만 그들은 '안내'보다는 '감시'가 주 업무이다. 물론 세계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예술품을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인 것도 알고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인정하지만... 어떤 때는 '내가 그 정도 상식도 없는 거 같아?'라는 반발이 소심하게 밀려올 때도 있다.
그런데 만져달라니? 그것도 제발 만져달라니!!
엄격한 박물관에서 이런 '간곡한 부탁'는 해방의 느낌까지 들게 하였다.
이 작품들은 모두 <Beyond Brilliance(광채를 넘어)>라는 제목으로 '주얼리 하이라이트'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4,000년 이상 된 보석과 장신구 15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아 영구적으로 전시하는 갤러리인데 보석의 휘황찬란함보다는 보석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되었다는 게 더 놀라웠다. 고대 이집트부터 최신 현대 작품까지 보석이 어떻게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하였는지를 보여준다.
보석은 10만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예술의 형태이다.
갤러리 입구에 있는 고대 이집트의 광배목걸이는 자그마치 기원전 2246년 작품이라고 한다. (사진 1의 왼쪽)
보석의 역할은 몸에 생동감을 주는 장식 예술이자 장식품이자 메신저라고 한다. 자세히 살펴서 섬세함을 느끼고 관찰하고 어떻게 착용하는지 상상해 보는 것도 큰 재미이다.
정말 눈을 휘둥그레하게 하는 작품들이 꽤 많았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좋아한다는 보석을 나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라 요시토모의 <Your Dog(너의 개)>이다.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너무 커서 위협적일 정도이다.
183 ×130 ×274cm.
검은색의 유리섬유로 되어 있어서 광택이 있고 얼핏 보면 귀여워 보이지만 개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면 침울한 표정이다.
일본 네오 팝 아티스트의 선두 주자인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 외로움을 투영한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의 의도는 작품 자체가 주는 동글동글하고 광택이 주는 귀여움과 거대한 크기로 인한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도록 한 것이다. 즉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동시에 미묘한 불안감을 같이 조성한 것이다.
나도 어릴 적 개를 길렀지만, 이 작품을 보고 귀여운 우리 강아지가 전혀 연상되지 않았다. 아마 그 이유는 3m에 달하는 거대함이 주는 공포와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게 작가의 의도라고 하니 작가는 역시 대단하다.
보스턴 박물관에서 꼭 봐야 할 것 중 하나로 꼽힌 일본의 예술품들이다. 사실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어서 건너까 하다가 들어가는 입구가 너무 이뻐서 입장하게 되었다. (사진 1)
굉장히 특이한 좌부상을 보고 '저 선들은 혈관일까? 경략일까?' 하는 의구심에 설명서를 읽어보니, 작가인 콘도 타카히로는 교토의 저명한 도자기 가문의 3대손이다.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보며 인간이 재난에 따른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어떻게 대처할까를 고민하다가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몸을 모델로 삼아 도자기에 얇은 은을 덮었는데 그것은 핵 오염을 상징한다. (사진 2)
보스턴 미술관의 대미는 한국관으로 맺는다. 하이라이트 소개 중 1층의 Gallery 179에 위치한 <KOREAN ART and the MFA>는 생각보다 작았고, 특히 일본관에 비해 여실히 작았지만...(왜 일본관과 비교를 하는지는 한국인만 알겠지?...) 그래도 내 나라의 작품이 버젓이 하나의 방을 차지하고 있는데 자부심이 느껴졌다.
설명에 의하면 ' <KOREAN ART and the MFA>는 한국과 미국 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1982년 개관했고, 작품들은 모두 미국인들이 일본에서 수집한 불화와 유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청자를 비롯한 도자기들은 찰스베인호이트가 1950년 기증하면서 컬렉션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탁 걸리는 문구가 있다.
'...일본에서 수집한 불화와 유물로 구성' 과연 수집이 맞을까? 정당한 방법으로 수집한 것이 맞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한국 문화유산을 어떻게 불법 반출하고 강탈했는지를 역사를 통해 익히 배운 나는 저 문장이 문구 그대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붓글씨 족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글씨이다.
‘思米愛錢眞俗兒(생각 사, 쌀 미, 사랑 애, 돈 전, 참 진, 속될 속, 아이 아)’
‘(배불리 먹을) 쌀이나 생각하고 돈이나 사랑한다면 (이런 인간은)진짜 속된 애이다.’
세속적인 삶에 대한 경계를 일컫는 말이지만 흥선대원군의 삶을 보면 그가 세속에서 진정 자유로웠는지는 확답할 수 없다고 본다.(사진 4)
강익중 작가의 <Happy Buddha(행복한 부처)>는 7.5cm 정사각형 소나무 패널에 크레파스와 템페라(달걀노른자, 물, 안료를 혼합하여 만든 고대의 그림물감)로 그린 것이다. 중앙의 30cm의 정사각형 부처를 기준으로 모두 84개의 격자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멀리서 보면 각각의 부처는 움직이는 픽셀처럼 보이는데, 강익중의 스승이기도 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연상시킨다.
이 각각의 7.5cm 부처는 '바람으로 섞이고 땅을 통해 연결된 우주의 창'으로 해석된다.(사진 6)
이 동상은 사이러스 E. 댈린 <Appeal to the Great Spirit(위대한 정령에게 하는 기도)>이다.
나바호 스타일의 예복을 입은 고독한 원주민이 마치 기도하듯 머리와 손을 하늘로 들고 말을 타는 모습은 자유롭고 위대함이 드러나 보인다.
원래 댈린은 원주민과 승마 조각상으로 명성을 얻었고, 많은 조각상이 공공 예술품으로 찬사를 받았다. 당시 지역 예술가였던 댈런을 후원하기 위하여 MFA 위원들은 1912년 이 자리에 동상은 설치했는데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제는 명실상부 MFA의 상징이다.
그렇게 긴 시간의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을 나서니, 어느덧 저녁 7시를 넘겼건만 바깥은 여전히 환했다.
그 밝음은 '조금만 더 볼 걸' 하는 아쉬움을 더 부추겼지만, 미련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보스턴의 밤을 혼자서 돌아다닌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순간의 호기로움은 이내 조심스러움에 자리를 내주었다.
입구 앞 잔디밭에 우뚝 선, 말을 탄 인디언이 취한 당당한 포즈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괜스레 부럽기도 했고 지금의 내 기분 같기도 했다. 아쉬움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오랜 염원이던 MFA 방문을 마친 후련함이 더 크게 자리 잡았기에, 나도 모르게 그 앞에서 같은 포즈로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마음은 '같은 공간, 같은 마음, 같은 자세'였지만,
몸은 '같은 공간, 비슷한 마음, 하나도 같은 않은 자세'가 되었다.
(사족인 듯, 사족 아닌, 사족 같은 후일담)
8시간이 넘는 관람 끝에 얻은 것은 3.7G 용량의 571장의 사진이었다. 전체 보스턴 여행의 사진이 아니고 보스턴 미술관에서만 찍은 것이다.
비전공자로서 미술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고,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찾아보고 기록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마주했을 때의 직관적인 감동과 작가의 의도를 알고 싶은 호기심이 합작하여 만든 나만의 기록은 은밀한 사치이자 숨겨진 낙원이다.
보스턴 미술관에 대한 감상이 전체 보스턴 기행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미술관 감상은 결핍에 대한 보상과 주변에서 얻을 수 없는 위로이다.
확실히 보스턴 미술관은 강했다.
전시가 산만하다는 평도 있지만... 매우 만족한다.
굿바이 MFA! 고마워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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