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3: 찰스강 일몰과 보스턴 지하철 노선에 대한 체험기
보스턴에서 꼭 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찰스강의 일몰이었다.
보스턴을 검색하면 나오는 멋진 사진 중에 ‘Esplanade(에스플러네이드)’의 일몰 사진이 많았고, 아들 친구 J가 강추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데 일단 'Esplanade(에스플러네이드)'가 낯선 단어라 찾아보니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영어로,
'강이나 바닷가를 따라 조성된 넓고 평평한 산책로 또는 공공 산책 공간'을 의미한다고 되어 있다.
찰스강의 에스플러네이드는 보스턴 백베이(Back Bay) 지역의 찰스강에 위치한 강변 산책공원이다.과학박물관에서 보스턴 대학교까지 약 3마일(약 4.8km)에 걸쳐 펼쳐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조깅이나 산책을 하기도 하고 중간에 위치한 작은 공원에서 운동을 하기도 한다.
보스턴을 떠나기 이틀 전, 아들과 그의 친구들은 찰스강에서 조깅을 하고 일몰을 보자고 했다. 그 반가운 제안을 어찌 거절하겠는가? 고맙다고 하며 넙죽 받았다.
제안을 받고 나는 상상에 푹 빠져 있었다.
찰스강가에서 김밥과 치킨, 그리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 일몰을 즐기는 낭만적 그림 말이다.
약속한 날, 정성껏 도시락을 싸고 아들 친구 A의 차를 같이 타고 MIT 주차장에 도착했다. 문제는 그곳부터 약속 장소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지 몰랐던 나는 무거운 음식 가방을 차에 두고, 물 한 병만 들고 나왔다.
아직 오후 4시, 일몰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다.
아이들이 운동 끝나면 다시 와서 음식을 가지고 일몰을 보러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아들은 나와의 산책 대신 친구들과 함께 러닝을 시작했고, 뒤처진 나는 뛰기와 걷기를 반복하며 멀어진 그들을 놓칠세라 열심히 따라잡았지만 이내 그들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아들로부터 구글맵 스크린샷과 함께 문자가 왔다.
‘여기로 천천히 오세요. 저흰 먼저 가서 운동하고 있을게요.’
결국 1시간쯤 열심히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고, 그들은 이미 땀에 흠뻑 젖은 채 운동 기구에 몸을 맡기고 열심히 근력운동을 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했음에도 그들의 운동은 멈추지 않았고 민망해진 나는 근처를 빙빙 돌다가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너무 땀범벅이 되어서 친구 J의 자전거를 타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통지였다. 일몰 감상과 준비된 음식에 대한 나의 피력은 ‘씻는 게 먼저’라는 아들의 확고함에 간단하게 묻혔다.
그렇게 나의 찰스강 일몰 로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솔직히 어이가 없었지만, 어떻게 하랴... 그렇게 귀가 후 샤워를 마친 아들과 친구들은 김밥과 치킨을 정신없이 먹어댔다. 배가 좀 찬 그들은 그제야 너무 일찍 만나서 운동을 한 게 실수였다며 막연히 다음을 기약했다. 나 역시‘괜찮다’라는 착한 어른 코스프레로 응수하는 것으로 훈훈한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그 아쉬움과 속상함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다음날 지난번 ‘프리덤 트레일’에서 놓친 몇 군데를 더 보고 나니 오후 6시가 되었고, 지도를 살펴보니 찰스강의 일몰 포인트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거기서 콘서트를 한다는 정보까지 찾게 되었다. 모든 게 딱딱 들어맞았다. 어제 잃어버린 퍼즐을 찾아서 오늘 제 자리에 꽂은 느낌이었다.
공연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그 다리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보행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기능적인 곡선 형태를 하고 있었다. ‘아서 피들러 보행전용다리(Arthur Fiedler Footbridge)’는 보스턴 문화 공연의 상징적인 인물인 아서피들러를 기념하여 만든 다리로 그는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의 전설적인 지휘자였다.(사진 1,2)
반구 형식의 무대는 그 자체가 서라운드 스피커 같아 울림이 컸고, 사람들은 잔디밭에 앉아 맥주와 음료를 들고 자유롭게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이미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한창이었고, 들려오는 곡은 내게도 너무 익숙한 닐 다이아몬드의 ‘Sweet Caroline(스위트 캐롤라인)’.
나도 얼른 캔맥주 하나를 사 들고는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잠시 보스턴 시민인 양 함께 리듬을 탔다.
어느덧 넘어가는 햇살의 그림자가 길게 꼬리를 내렸고 강변의 데크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몰을 기다리며 맥주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도 데크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는 강물에 비친 붉은 노을과 떠 있는 댕기들을 관조하였다.
취기가 살짝 오르고 기온도 제법 올라갔다.
‘이 옷, 미국이 아니면 언제 입겠어!’라는 생각에, 한국에서라면 탈의실에서나 입어보고 놓고 나올 끈 원피스를 드디어 카디건으로부터 해방했다. 환갑 여자의 소심함은 카디건과 함께 과감히 벗어던져졌고 살짝 흐릿한 셀피의 추억을 남겼다.
그렇게 하염없이 일몰을 보며...
안 봤으면 후회할 뻔했어!
늬들이 아니면 내가 혼자 못 볼 것 같아?
난 해냈어!
자유와 힐링 그리고 열심히 산 자의 보상까지 들먹이며 완전히 만끽하고 있었다.
그렇게 꿈속에서 헤매다가 현실로의 복귀는 의외의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배터리가 18% 남은 것을 확인한 나는 슬슬 초조해졌다. 여유로 챙겼던 보조배터리도 이미 다 사용한 후라 쓸모가 없었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귀가 방법을 스크린샷으로 저장하고, 아들 번호를 손바닥에 메모하며, "일몰 보다가 늦었어. 바로 들어갈게♡"라는 다정한 톡 한 줄로 안부와 아이의 걱정을 덜었다.
20분쯤 걸으면 그린라인 알링턴 역에 도착하고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한 번만 환승하면 집 근처 길먼스퀘어 역까지 갈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루트였다.
보스턴 지하철은 색으로 노선을 구분하는데, 같은 색이라도 노노선에 따라 운행하는 역이 다르니 잘 보고 타야 한다.
문제는 알링턴 역에 도착하자마자 벌어졌다.
역무원들이 사람들을 지상으로 내보내는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당황한 나는 역무원에게 그 까닭을 물었고 귀찮은 듯 그는 안내판을 확인하라고만 했다.
다시 올라와서 알림판을 보니
‘6월 4일~8일까지 밤 8시 이후 운행 불가’라는 큰 글씨 아래 우회 방법들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 방법들은 다 그린라인을 탈 수 없는 방법들이라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사진 좌)
청천벽력 같은 공지와 좋지 않은 나의 상황은 긴장감과 불안을 높혔다.
정신을 차리고 ‘노스스테이션과 파크스트리트 사이의 오렌지 라인을 이용하라.’라는 또 다른 알림에 따라 부지런히 그곳으로 향해 걸었다.
배터리 방전에 따른 공포 때문이었을까? 잘 걷다가 굳이 그린라인 표지가 있는 지하철 역사로 또 내려갔고 거기서도 또 쫓겨났다. 당황하면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걸 그날 뼈저리게 배웠다.
우여곡절 끝에 오렌지라인을 타고 버스로 환승하려 했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고, 결국 40분을 더 걸어 집에 도착했다. 어두운 밤길, 드문 인적, 길가에 누워 있는 부랑자들을 피해 걷던 그 여정은 공포와 긴장이 넘쳤다.
경보 대회에 출전한 사람처럼 발걸음은 최고 속도였고 잘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는 시시때때로 나를 격려하였다. 마침내 집에 도착하자 맥이 탁 풀렸다.
집이 보이자 안도와 함께 아이들이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까?’하는 염려가 앞섰다. 그런데 현관에 들어서자 의외로 집 안이 조용했다.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일단 배터리를 충전해 놓고 샤워부터 한 후 아들방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잠시 후 왁자지껄한 소리에 1층으로 내려가 보니 아이들은 막 귀가한 참이었다. 운동하고 저녁 먹고 들어오는 길이었다고.
그리고 충전된 내 휴대폰을 열어보니, 내가 아들에게 보낸 카톡은 여전히 1이 살아 있었다.
결론은 아들은 운동하느냐 내 톡을 못 보고, 그리고 나의 이런 엄청난 사건들을 전혀 상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자초지종 설명을 들은 아들은 놀란 눈을 하며 “아이고.. 전화를 하시지! 왜 그런 모험을 하셨어요? 큰일 날 뻔하셨네. 고생하셨어요.”라며 더 이상 내가 더 이상 사족을 달 수 없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래, 결과가 좋으면 된 거다.
아무 일 없었고, 일몰도 보았고, 멋진 사진도 건졌고, 보스턴 밤길은 위험하다는 교훈도 얻었으니 1석 4조.
그렇게 자위하고는 밤새 곯아떨어졌다.
아참, 숙면을 취했으니 1석 5조!이었다.